신기식 목사/고시연 상임대표
신기식 목사/고시연 상임대표

[고양일보] 백선엽 장군, 박원순 서울시장 두 사람의 장례가 겹쳤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에 각각 분향소가 차려졌다. 백 장군은 군인의 길에서 백수를 다했고, 64세 박 시장은 정치인의 길을 가다 북한산 자락에서 자살했다. 백 장군은 대전 현충원에 묻히고, 박 시장은 화장장 후 재가 되었다. 백 장군의 장례가 비교적 조용한 반면, 권력의 실세인 탓에 박 시장 장례식이 더욱 떠들썩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처럼 두 사람의 공과(功過)를 두고 세간의 정치적인 입장이 갈리고 있다. 백 장군은 6.25 전쟁 영웅임에도 친일행적 비판을 받아 왔고,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로 정치적 성공을 하였지만 자살로 성범죄 처벌을 피하려 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죽음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 강건하여 장수를 해도 수고와 슬픔을 안고 살다가 죽는다. 죽음 형태는 다양하다. 자연사(自然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병사(病死)하는 이도 있다. 사고사(事故死)도 있다. 순직(殉職)하는 공직자도 있고, 전사(戰死)하는 군인도 있다. 순교(殉敎)하는 종교인도 있다. 열사(烈士)의 죽음도 있고 무명용사(無名勇士)의 죽음도 있다. 대의(大義)를 위해 자결(自決)하거나 분신(焚身)하는 이도 있다.

죽음의 원인에 따라 타살, 자살이 있다. 타살은 타인의 공격으로 죽는 경우다. 자살은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동이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사상에서는 자살은 죄악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살을 유도거나 관여할 때 법률적으로 자살교사죄, 자살관여죄, 자살방조죄가 성립된다.

군인, 서울시장의 죽음

군인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전쟁 시에는 목숨을 걸고 전선에 나서게 마련이다. 그래서 임무 수행 중 극한 상황에서 어떠한 원인과 형태의 죽음이라도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이에 이의를 다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 정치인의 죽음은 군인의 죽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정치인에게는 군인처럼 극한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정치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자신의 범죄 때문에 자살하였다면 정치인으로서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자살, 노회찬 국회의원의 투신자살,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이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다. 어떤 공적인 정당성 없이 자살했기 때문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매우 실망스럽다. 더구나 실세 정치인이 친분이나 정치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자살을 미화하는 것도 비열한 행위다. 권력의 실세나 거창한 장례식 때문에 역사적인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시장의 자살을 두고 ‘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라는 집권당 국회의원의 조의(弔意) 현수막 내용이나, ‘너무 순결해서 자살했다’는 추종자의 추모 글, 이순신 장군이 관노와 동침한 것에 비교하는 글들은 애도보다는 죽음을 미화하는 광적인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이 최후에 전선에서 전사한 것과 박 시장이 산에 가서 자살한 것을 같은 죽음의 선상에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박 시장 자살의 심적인 동기는 알 수 없지만, 미투 피해 여성의 고소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순애(殉愛,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침)가 아니다. 시민운동가와 3선 서울시장으로 대통령 꿈이 깨졌다는 좌절감도 컷을 것이고, 그가 몸담은 집권당 조직원으로서의 고뇌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세간의 비난을 피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살에 심적으로 동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유종의 미’가 아니다. 더구나 역사에 대한 책무가 아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떳떳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사의 찬미’ 대상이 아니다.

백선엽 장군 영결식
백선엽 장군 영결식

집권당의 애도하는 이들

집권당의 권력 실세들은 대개 시민운동, 민주화 운동가들로 뭉쳐있다. 이제는 아우성치는 저항 세력이 아니라 큰소리치고 명령하며 군림하는 지위에 있다. 불과 30년 전에 이상 사회를 꿈꾸며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약자들과 호흡하는 젊은이들이 아니다. 기득권 반열에 있다. 권력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 집권당 대표는 보수 세력이 쇠퇴했다고 보고 유일한 대안 권력인 것을 자만하며 20년, 30년 장기 집권을 자신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불의를 비판하던 이들은 절대 선과 정의감에 충만하여 상대성을 잃었다. 더 이상 비판받지 않으려 한다. 절대 과반인 180석의 국회의원으로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집권당의 이념과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법을 만든다고 한다. 국회의원 180명이 아니라 그냥 한 덩어리로 보인다.

집권당은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실용 정책을 추구할 생각이 없다. 실제적인 변화와 개혁을 완수할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 국토교통부, 법무부, 통일부, 국방부, 산업자원부, 교육인적자원부, 기획재정부 장관들은 무익한 결과에 대한 아무런 고백이 없다. 기득권자로서 찬란한 내용의 기자회견으로 실패를 포장하기에 능숙하다. 코드 인사도 재원이 바닥난 것 같다.

경제정책, 외교정책 실패를 만회할 양 평화통일, 정치개혁, 검찰개혁을 표방하고 있지만 신통하지 않다. 학생운동 하듯이 구호와 말 잔치, 현수막과 포장 정치에 능숙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상(偶像)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덮으며 엄청난 빚을 내어 구제정치로 모면하려고 한다. 국민의 생존을 담보로 언제까지 정치 실험을 하려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이상과 도덕성을 가지고 헌신하던 젊은이의 기질은 자라졌다. 권력의 시녀가 되어갔다.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유재수 부산경제부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위법성과 부도덕성을 볼 때 더 이상 책임성과 윤리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앞으로 더 유사한 일들이 집권 세력에서 터져 나와도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응어리를 안고 감당할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우러러볼 대상이다. 권력의 노리개나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이제부터 집권당은 정치인의 허망한 죽음을 찬미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상복 차림으로 허망함을 가리고 국민을 현혹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차라리 청와대 정문 앞에 거적을 깔고 국민을 행해 석고대죄(席藁待罪,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주기를 기다림)해야 한다. 1명의 미투여성과 서울시장 중에 누구를 택(擇)할지를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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