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첩작전 베테랑에서 지뢰제거 운동가로 변신

국방부, 남한의 모든 지뢰 제거 489년이 걸린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당시, 남측 DMZ 군사분계선(MDL)에서 수색을 진행하던 중 수색대대장(중령)이 북한 목함지뢰를 밟아 쓰러졌다. 당시 이종명(육39, 현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중령은 그를 등에 업고 안전지대로 나오다 다시 지뢰를 밟았다. 결국 2명 모두 두 다리 하퇴부를 절단해야 했다. 

김기호 소장은 한국다선문인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창작시화전과 함께 지뢰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있다.

휴전 63주년···끝나지 않은 전쟁
 
현재 DMZ 내에는 최대 170만 발의 지뢰가 매설돼 있다. DMZ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도 산발적으로 7만5000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6.25전쟁의 상흔이 한반도 전역에 남은 겁니다. 결국 폭발 사고로 이어져 우리 일상에 침투하고 있는 거죠. 2011년 사단법인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에 따르면 강원도에만 228명의 지뢰 피해자가 있습니다. 경기도 지역에는 300명, 전국적으로는 휴전 이후 1000여 명의 피해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뢰 종류 및 특성. <사진=지뢰제거연구소 제공>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은 민간의 노력으로 밝혀진 통계만 이정도일 뿐, 지금까지 사상자 수는 최대 5000명에 이른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나마 2014년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지난해 12월에는 이에 대한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뢰 제거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입니다. 2010년 국방부는 남한의 모든 지뢰를 제거하는데 489년이 걸린다는 황당한 자료를 발표했어요” 

12년 동안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기호 소장 

김기호 소장은 2004년 전역 이후 12여 년 동안 오로지 지뢰 제거에 생을 바치고 있다. 지뢰 제거 장비 개발부터 시작해 지금은 민간에서도 지뢰제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가 지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기무사령부에서 대간첩작전 임무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1974년 기무사 정보수사요원 공채로 군인이 된 후 처음 10여 년 동안은 군대 내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그가 맡았던 부대는 늘 깨끗했던 만큼 그의 감시 기준은 굉장히 철저했다.

“처음에는 항공대 보안관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기무사령부 본래의 임무인 부대 내 부정비리 색출 및 감시 업무를 맞게 된 거죠. 그 당시에도 군대는 부패한 곳이 많았어요”라고 김 소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30여 년 군 생활을 통틀어 받은 표창만 24개다. 대통령, 안기부장, 국방부장관, 경기도지사 표창을 포함해 수시 표창인 기무사령관 표창을 20번이나 받았다. 그 만큼 자신이 맡은 업무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충실히 해냈다는 얘기다.  

김기호 소장이 직접 발견한 M3 대인 지뢰. <사진=지뢰제거연구소 제공>

84년부터 그는 방첩업무를 맡았다. 대간첩작전 및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면서 폭발물 처리(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 교육을 받았다. 지뢰는 교본 등을 통해 독학으로 지뢰 및 탐지기에 대한 공부도 했다.  

“1997년 임진강 벼락바위 무장간첩 침투사건 수색에 나갔다가 벼랑에서 굴러떨어졌어요. 아프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수색하던 중 간첩들이 버리고 간 소총과 침투배낭을 찾아냈죠. 그렇게 간첩 침투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작전이 전개 될 수 있었습니다”

김 소장이 지뢰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을 갖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된 2000년에 일어난 사고다.

“이종명 의원의 사고는 저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어요. 그 무렵 방첩장교로 있으면서 5월 초쯤 전방사단 DMZ내 GP를 방문한 후 군단장에게 ‘DMZ 추진철책 북쪽지역 군사분계선(MDL) 팻말 위치 확인 필요’라는 제하로 보고서를 올렸죠. 그런데 이 의원의 후임으로 온 설동석 중령(육사40기)이 군사분계선(MDL) 팻말을 확인하다가 그 전날 폭우가 내릴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떠내려온 북한 목함 지뢰를 밟은거죠. 당시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평화 분위기 속에서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어요”

그 사고를 회상하면서 김 소장은 안타까움과 죄책감 그리고 좌절감에 빠졌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으로 사명감이 생기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2000년 1월에 허리수술, 간경화 증상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았어요. 그 와중에 경의선 잇기 사업을 하는데 지뢰제거작전에 참여해 달라는 기무부대장의 요청을 받은 거예요. 거절할 수가 없었죠. 피해를 입은 동료를 생각하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4년 동안 기무반장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이 지뢰제거 작업을 하면서 그는 수목이 우거진 우리의 산악지형에 맞지도 않는 해외 첨단지뢰제거장비를 비싼 돈을 주고 도입해 사용하는 비합리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직접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한국 지형에 맞는 ‘지뢰제거용 차’를 개발해 2,000여 발의 지뢰를 제거했습니다"  
 
2004년 6월 말 전역하자마자 그는 지뢰제거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지뢰제거 연구에 몰두해 6개의 지뢰제거기 발명 특허권을 보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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