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잔뜩 흐린 지난 29일 옥천군 정지용 생가를 방문했다. 코로나19 덕분에 정지용문학관이나 생가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외부 전경 구경을 마치자, 빗방울이 세차게 내렸다.

정지용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1902년 6월 20일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일본의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에는 윤동주와 함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교토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간간이 들린다고 한다.

정지용은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는 구인회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청록파(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와 윤동주, 이상 등은 그가 추천했다. 일제가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 1942년 이후 붓을 꺾고 절필했다.

그는 천재적인 기질과 섬세한 언어 감각으로 '향수' '고향' '호수' 등 주옥같은 명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와 글은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등의 간행복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1988년 5월 15일에 지용제가 처음으로 거행된 이래 해마다 옥천에서 지용제가 전국적인 문학축제로 성대히 치러지고 있어 그의 시 세계가 더욱 빛나고 있다.

현재 그의 사인(死因)은 납북되던 중 소요산 근처에서 폭격으로 인해 사망(1950년)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정지용의 자녀는 3남 1녀이다. 2000년에 북한에 있던 3남(정구인)이 아버지 정지용을 찾겠다고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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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문학관 입구 모습, 느린 우체통이 이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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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정지용문학관 휴관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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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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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문학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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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 모습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이 집에서 태어나 꿈으로 가득찬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집이 들어섰으나, 1996년 7월 30일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담너머로 본 정지용 생가 모습
담너머로 본 정지용 생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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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의 모습이다. 실개천은 폭이 매우 좁고 작은 개천을 말하는데 생각보다 개천이 크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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