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조규남 목사/우림복지법인 대표

[고양일보] 아직도 이 세상은 기아(飢餓)로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이 세상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굶어 죽는 사람보다 너무 많이 먹어 죽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의 특별한 빈곤 지역 말고는 대체로 세상은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 문제에서 벗어나 풍족한 삶을 사는 편입니다.

물론 우리 아주 가까운 곳에 기초수급대상자로 살아가는 분들도 많고 미국 같이 잘사는 나라도 노숙자들이 무료 배식을 위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만, '풍족'의 기준을 일반화시키고자 할 때의 사회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결핍(缺乏, lack)과 이에 따른 긴장감의 부족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저축과 검소를 말하지 않고 소비를 미덕으로 내세우며 소비를 권장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 원리로 "적게 먹고 적게 쓰자"는 구호에서 "많이 먹고 많이 일해서 많이 쓰자"는 구호로 바뀐지가 오래입니다. 또 할 수만 있으면 이는 매우 합리적인 경제 방안이라 여기기에 모두 여기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풍족하여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왜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공허한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性)문화도 그렇습니다. 성적 억압의 예전 시대에는 성적인 욕구불만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성문화가 개방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성범죄는 더욱 증가하고 뭔가 성에 대해 더 굶주리는 듯한, '군중 속의 고독'처럼 성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성으로 인한 박탈감과 고립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현실적으로 부족한 상태가 아닌 심리적 결핍입니다. 역설적으로 부족하지 않으므로 부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너무 넘쳐 흔하기에 귀한 것을 가졌다는 마음의 풍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긴장감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의미(意味, meaning)의 문제입니다. 독일 나치 정권의 포로수용소를 거치면서 놀라운 삶의 의미를 발견했던 유태인 정신과 의사, Viktor E. Frankl은 <The Will to meaning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현대인의 딜레마'를 이렇게 말합니다.

"프로이트의 시대는 긴장의 시대였다. 그 긴장은 대규모로 이루어진 성(性)에 대한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안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긴장이 없다. 이런 긴장의 부족은 무엇보다도 내가 실존적 공허 혹은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의 좌절이라고 말한 바로 그 의미의 손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실존적 공허에 살고 있으며, 그 실존적 공허는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주로 나타난다."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올바른 목표가 주어지고 이에 따라 자신의 사명과 역할 등의 삶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발견할 때 삶의 충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것이 풍족한 상태에 있더라도 이 삶의 존재론적 이유와 의미가 발견되지 않으면 인간은 결국 실존적 공허로 삶의 권태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미가 없는 삶이 지속될 때 삶은 지루해지고 긴장감이 사라집니다. 문제는

이 긴장감의 결여로 인해 삶은 더욱 나태해지며 생동감을 잃고 좌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Viktor El. Frankl은 위의 책에서 연이어 '풍요로운 시대(사회)에서의 부족한 고통'을 역설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는 대부분 사람은 요구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적어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풍요로운 사회는 사람들의 긴장이 결여되어 있는 탓에 요구가 별로 없다. 하지만 긴장이 없는 사람은 건전한 방식이나 불건전한 방식으로 그런 긴장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건전한 방식에 관해서 말하자면 사람으로 하여금 요구가 부족한 사회가 그들에게 부과되지 않았던 요구를 일부러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도록 함으로써 긴장에 대한 요구를 지탱해 주는 스포츠의 기능이 바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금욕주의도 스포츠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담력 시험을 즐겨 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파도타기에 중독된 사람과 같은 형태로 자기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이 사회에 부족한 긴장과 흥밋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그는 '긴장을 통한 의미의 발견'에 있어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긴장, 의미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같은 종류의 긴장은 인간 존재에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긴장은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긴장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확고한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것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생명을 연장시키는(생명을 보존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동인이 된다. 그것이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도 만들어 준다. 일례로,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농성이 시작되었을 때 학교 병원의 정신과를 찾는 학생수가 뚝 떨어졌다. 하지만 농성이 끝나고 나자 그 숫자가 다시 심하게 증가했다. 농성기간 동안 학생들은 언론 자유 운동에서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패턴과 문화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스크처럼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던 것들이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자리매김했고, 반대로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모두 강제 차단되자 이거 아니어도 놀랍도록 모두 잘만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부터 소소하게 작은 것들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점차로 변화되고 또 그런대로 적응해가고 있는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관계자들이 한 시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한 시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발열 체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트레스가 싫어 피하는 길만을 모색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좌절에 빠지기 쉽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로 잃은 것도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귀중한 것을 재발견하고 얻는 것도 있습니다. 긴장감(緊張感, tension)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는 부정직한 일이나 사회윤리나 국민적 도덕 관념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되고 또 재발되는 것은 이러한 긴장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긴장감을 스트레스로만 따돌려 피하려 하다가 그만 너무 방만해지고 삶이 루즈(loose)해졌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에 새로운 기대감이 없이 권태감(倦怠感, ennui)만 늘어 삶이 영 재미없어졌습니다. No Stress But Strain(tension)!

긴장감이 필요한 때입니다. 경각심(警覺心, awakening)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깨어있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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