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최근 입주민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사태와 관련, 이재준 고양시장은 경비업 종사자들의 최소한의 인권과 복지를 법으로 보장하는 ‘경비원 인권지원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12일 밝혔다.

이 시장은 “이번 사건처럼 계약관계를 이용한 갑질은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행법상 개선이 불가하다면, 시 차원에서라도 경비원의 최소한의 인권과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했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경비원 갑질, 인권조례 제정해 원천 차단할 것
이재준 고양시장은 “경비원 갑질, 인권조례 제정해 원천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현행 경비업법에는 경비원의 자격기준과 지도‧감독 등 경비업 종사자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만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복지나 피해방지 조항은 전무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근로자들에게 최소한으로 적용되는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도 적용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중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는 근로시간, 주휴일, 연장수당 규정의 예외로, 경비원들은 이 예외 대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비원들은 경비업법과 공동주택관리법의 ‘이중법’을 함께 적용받고 있어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가 더욱 심화된다는 평가다. 경비업법은 경비원이 순찰, 관리 등 일반적인 경비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공동주관리법상 위탁관리는 이를 포함하고 있어 사실상 경비원은 분리수거, 택배, 주차관리 등 대부분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양시에서 추진 중인 ‘경비원 인권지원 조례’는 경비원에 대한 폭행, 폭언을 비롯해 각종 인권과 법률상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사용자에게 함께 연대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그 골자로 한다.

아울러 고양시에서는 무료법률 상담과 심리 상담을 지원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찾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예정이며, 공동주택 관리자와 주민에게 연 1회 인권교육도 실시한다고 규정할 예정이다.

이 시장은 “대부분 은퇴자나 취약계층으로 다른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경비원들에게 공동주택 관리자와 주민은 곧 생사여탈권을 쥔 이들이다”며 “노동과 인권이 혼재된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인권을 포기하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시에서 이번 조례가 제정될 경우 지자체 최초의 경비원 보호조례가 된다. 시는 충분한 검토로 조례안을 마련해 오는 7월 임시회에 조례를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고양시의 입장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현재 경비원들은 다소 급여가 삭감되더라도 현직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백석동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종사하는 A 씨는 “고양시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이런 조례 때문에 오히려 경비원을 해고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 걱정이다”고 우려의 소리를 전했다.

고양시 주민 B 씨도 “경비원이 분리수거, 택배, 주차관리 등을 하지 않으면 주민이 해야 할 것인데, 현실적으로 어느 주민이 할 것인가?”며 “결국 경비원 일부를 해고하고 그런 일을 담당할 직원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직 경비원이었던 C 씨도 경비원 인권조례 제정에 대해 "현재 대부분 아파트는 경비원을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어 책임은 용역회사에 있다. 관리소장이나 주민대표가 책임을 질 여지가 없다고 본다. 봉사직인 주민대표가 책임을 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큰 걱정은 고양시장이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고양시민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조례는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사용자에게 함께 연대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주로 관리소장과 주민대표들이 연대책임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모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한 경우, 관리소장과 주민대표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거나 갑질을 하면 모 주민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거나 민사상 배상 등을 하면된다. 물론 관리소장이나 주민대표가 공동으로 갑질 혹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시킨 경우(교사)에는 그에 따른 형법상 죄를 물으면 그만이다. 관리소장이나 주민대표라는 이유만으로 연대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친 규정이고 상위법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조례에는 공동주택 관리자와 주민에게 연 1회 인권교육도 실시할 것을 규정할 예정이다. "이 주민이 누구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당당 공무원은 “주민대표로 보면 된다”고 답했다. 관리소장은 정기적인 교육 시간에 인권교육을 첨부하면 된다. 하지만 동대표 등 주민대표를 상대로 연 1회 인권교육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행정력과 세금 낭비다. 더불어 주민대표에게 이런 교육을 강제한다는 발상이 이해가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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