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가는 길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형무소로 가는 길목. 경찰이 검문을 하고 교도소 직원들이 근처에서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공항근처. 낡은 구시가지 개천변의 빈민가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 파라냐케 도시 유치장. 그리고 그 곳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메트로 마닐라 파라냐케 시내의 도시형무소 모습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이곳에서 두테르테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시장은 새로운 유치장 건물을 짓고, 아직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유치장은 그저 흉포한 반사회적 범죄자를 격리시키는 곳이 아니라, 이들이 다시 사회로 되돌아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 낭만적인 철학을 필리핀 최초로 실험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실험의 주역은 공무원들이 아니었다. 투테르테 정부 각료들의 부인들이 모여 결성한 장관부인재단 <Cabinet Spouses Foundation>과 그들이 초청한 시민들이 피플의 힘을 모아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할 뿐이었다.

좌로부터 파라나케 시장 부인, 유치장 소장, 마더 리키, 필자

그 꿈의 얼개는 대략 이랬다.

새로 생기는 유치장 건물을, 감옥이 아니라 HOME으로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의 기능을 새롭게 디자인하자는 것이었다. 

책을 모아둘 도서실 공간, 실내운동을 할 탁구장 공간, 원하는 체스, 카드 등의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실 공간, 옥상에는 농구대와 운동시설을 이용할 공간 등을 만들어 유치장에 기증하겠다는 매우 간단명료하고 우직한 믿음이 그 구체적 내용이었다.

부인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유치장 구석구석을 돌면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토론을 하며 실현가능한 계획들을 만들어 나갔다.

우리는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좌로부터 제4지역경제발전위원장 부인, 필자, 법무부장관 부인

우리는 현장답사를 마치고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 모여 앉았다. 그렇다. 고급 카페가 아니라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참으로 소탈하고 편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33페소(825원)짜리 블랙커피를 마시며 다시 생각을 가다듬고, 서로를 위한 비판과 칭찬에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이 자리에는 복지부장관 부인도 뒤늦게 합류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신뢰란 이런 것인가?

좌로부터 필자, 파라냐케시장 부인, 법무부장관 부인

나는 한국산 중고 텔레비전 1대와 종이보드 게임을 구하는 것으로, 숙제가 결정되었다. 동대문 완구시장에 가면 체스보드 하나에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 그 비밀을 내가 폭로하자, 사람들은 호탕하게 활짝 웃어주었다. 앞으로 이 숙제는 내가 쭉 맡아야 할 듯하다고 자청하고, 소포로 마닐라에 보내는데 필요한 예상 소요시간을 계산해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그들이 내게 신뢰와 우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피플 파워를 조금씩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필리핀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낭만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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