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여성창업지원센터 201호. 지난해 8월, 캘리M(캘리그라피모놀로그) 박서영 대표에게 텃밭 같은 7평 사무실이 생겼다. 보증금 50만 원, 월세 10만 원으로 2년을 보장 받은 사무실에서 박서영 씨는 매일 즐거운 고민을 한다.

여성 기업인을 지원하는 고양시여성창업센터 4기, 캘리M 박서영 대표.

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 나는 다섯 종류 야생초를 심어볼까. 아니면 먹을 것을 포기하고 텃밭을 꽃밭으로 만들어볼까. 작은 밭을 삽으로 파 일궈놓고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어린 농부의 마음이다.

“캘리그라피 상품에 더 매달려야 할까. 출판 쪽에는 더 좋은 길이 없을까. 전시를 기획해 보니 즐거웠는데, 그 길이 맞지 않을까. 저, 뭘 하면 제일 잘할 수 있을까요?”

54세 나이가 걷힌 맑은 눈으로 그녀가 되물었다.

겸손이다. 박서영 대표는 이미 업계에서 꽤 지명도 높은 유망한 캘리그라퍼다.

 

무대뽀는 힘이 세다

2015년 서울 디자인 재단 공모에 선정되면서 광화문 한글누리마당에 입점했다. 사업자를 낸 이후 연하장, 문패, 엽서 같은 캘리그라피를 접목한 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2016 한국브랜드선호도 인증식에서 청첩장 부분 1위를 수상한 보자기 카드와 손 글씨를 접목한 콜라보를 진행, 뜨거운 반응도 맛봤다.

숨을 불어 넣으면 조명이 커지는 ‘숨(SOOM)봉투’, 스마트폰 액세서리 ‘아이링’에도 캘리그라피의 멋을 담았다.

“숨봉투와 아이링은 제가 업체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상품이 마음에 들어 업체에 직접 전화하고 찾아가 콜라보를 진행하고 싶다고 졸랐죠.”

교보문고 핫트랙스 입점도 겁 없이 담당자와 만나 일을 벌렸다. 40대 중반, 남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함께 공부했던 젊은 친구들보다 결과가 알찼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무대뽀 정신’ 덕분이었다.

작업 도구는 가리지 않는다. 붓, 구겨진 종이, 휴지까지 그녀에겐 색다른 캘리그라피로 가는 도구가 된다.

인생 2막으로 행복한

전시도 꾸준했다. 무리 없이, 그러나 과감하게 판을 키웠다. 2014년에는 집 근처 카페에서 동국대평생교육원 제자들과 그룹전 ‘캘리그라피 展'을, 2016년에는 연고 없는 젊은 거리 홍대까지 진출, 빨간책방 카페에서 개인전 ‘봄봄’을 열었다. 몇 달 후 10월에는 전시 기획자로 나섰다.

“우체국에 가서 우체통도 직접 들고 왔어요. 현장에서 엽서를 사서 바로 우편 발송이 되면 재밌겠다 싶었죠. 반응이 좋더라고요.”

광화문 한글누리 ‘한글 멋글씨 엽서전’은 일반인과 캘리그래퍼 26명이 함께 작업해 화제가 됐다. 일반인에는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선한 시도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돌아왔다.

“나이를 먹었다는 게 좋은 점도 있어요. 무서울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고. 안 되면 말지, 라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데 남보다 시간이 없잖아요. 망설일 시간이 없죠.”

남편을 따라 나섰던 10년의 유학 생활, 취직할 시점을 놓쳐 선택했던 영어 강사, 또 그렇게 10년. 뒤늦게 캘리그라피로 눈을 돌린 건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직후였다.

장성한 아들에게 쓰는 손 편지가 행복하고, 책을 옆에 놓고 끄적끄적 좋은 글귀를 옮겨 적는 자신에게서 스스로 캘리그라피의 즐거움을 찾았다. 캘리그라피 책 한 권을 사서 저자에게 이메일로 배우겠다 청한 게 12년 전의 일이다. 학생으로 배우고 강단에 올라 제자를 키우고, 꾸준히 팔려나가는 캘리그라피 상품도 개발했다. 아직 ‘성공’이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다시 열린 인생 2막 덕분에 박서영 씨는 자신감을 얻었다.

박서영 대표의 마음 정성이 담긴 캘리그라피 작품들.

늦은 오늘은 없다

“100세 시대잖아요. 50대라 해도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은퇴를 준비하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 복잡해져요. 늦지 않았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어야죠.”

매입 매출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사업가가 됐지만,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도 크다. 요즘은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탐색 중이다. 오전 오후 고양시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시간이 해질녘 즈음. 새벽 2~3시까지 사무실 불을 밝히는 게 일상이 됐다.

“마음이 담긴 글씨를 쓰고 싶어요. 예쁜 글씨를 상품에 얹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글씨요.”

빠르게 쉽게 표현되는 세상이 박서영 씨는 낯설다. 세상의 속도보다 느리지만 꾹꾹 정성껏 눌러 담은 마음의 선물을 만들고 싶다.

하고 싶은 거 많은 박서영 씨의 얼굴빛이 열기로 달아오른다. 옆 사람에게 전달전달 되는 ‘팔무리’처럼 ‘마음무리’로 전달할 마음은 무엇일까. 캘리그라퍼 박서영 씨의 하루가 따뜻한 고민으로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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