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동구 중산마을 9단지 인근 중산로에 있는 찻집 '춘향'의 겉모습이다.  주인장에 따르면 춘향은 '봄의 향기' 라는 뜻이다.
일산동구 중산마을 9단지 인근 중산로에 있는 찻집 '춘향'의 겉모습이다. 주인장에 따르면 춘향은 '봄의 향기' 라는 뜻이다.

[고양일보] 일산동구 중산마을 9단지 버스정류소 곁에는 녹색간판의 찻집이 숨어있다. ‘숨어있다’라고 한 것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정도로 간판의 존재감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찻집의 문을 여는 순간, 예사롭지 않은 어떤 정갈한 세계를 향한 통로를 갖게 된다. 그렇다고 다인들끼리 모여 다도를 익히는 곳은 아니다. 응당 사람이라면 바라는 다정다감한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춘향’이라는 찻집 이야기다. 작년 이맘때 문을 연 이 아담한 찻집은 어느덧 동네 ‘사랑방’의 정취를 풍긴다. 방송인, 시인, 교수, 음악가, 직장인, 한량, 중소기업 사장, 입시학원 원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춘향’을 찾는 이들 중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있다. 임우기 문학평론가, 김상천 문예비평가, 치유명상에 조예가 있는 ‘평산’ 신기용 음악가, 영어 교육자인 곽영일 교수, 하재일 시인, 김이듬 시인, 류지남 시인, 배현경 요리연구가 등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한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한 모금의 차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차보다는 차를  마시는 그 마음을 즐기기 위해서 모여든다는 점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찻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뿐만 아니라 찻잎으로부터 올라오는 향을 맡고, 찻잔 속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찻물의 빛깔을 음미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그런데 이곳 ‘춘향’에서 차 마시는 행위에는 하나 더 추가된다. 다른 이에게 차를 권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처음 만난 낯선 다른 사람에게도 넌지시 말을 걸고 되돌아온 말에 기꺼이 화답할 채비를 한다는 뜻이다.

춘향의 차분하고 검소한 내부 모습. 가지런히 정리된 여러 크기의 다기와 중국 등에서 수집한 각종 차들이 진열되어 있다.
춘향의 차분하고 검소한 내부 모습. 가지런히 정리된 여러 크기의 다기와 중국 등에서 수집한 각종 차들이 진열되어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춘향을 찾은 누적 고객수가 3052명입니다. 제가 찻집을 열면서 내걸었던 캐츠프레이즈가 ‘보이차는 중산마을로’였습니다. ‘춘향’뿐만 아니라 중산동에 전통찻집이 많이 생겨 사람의 힘듦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차 마시며 얘기하고 웃고 서로 토닥거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원했어요.”

춘향의 주인장인 박효산씨(46세)의 말이다. 박씨는 원래 수입자동차 판매 회사에서 직장인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1월부터 ‘남성 전용 헤어컷’이라는 틈새시장을 노려 문을 두드렸지만 여의치 않아 찻집을 열게 됐다. 그는 2002~2003년경부터 우연찮게 인사동과 인근 조계사에 방문하면서 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관심이 중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차를 구매하거나 직접 중국으로 가서 여러 차를 수집하면서 단단한 ‘취향’이 되었다. 그리고 ‘큰돈을 벌지 않고 오로지 마음이 향하는 그대로 살아 보겠다’는 용기가 더해져 마침내 직업이 된 경우다.

그에게 차가 가지는 매력을 물었다. “차는 나와 대면하는 매개체입니다. 차를 누구와 함께 마시는 것도 좋지만, 차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의 정점은 혼자 마실 때 찾아옵니다. 차를 앞에 두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고즈넉한 시간과 공간을 가질 때 아주 잔잔한 행복감이 내 속에서 퍼져나갑니다.”

'춘향'의 주인장인 박효산씨. ‘보이차는 중산마을로’, 이것이 지난해 이맘때 즈음 찻집을 개업하면서 내건 캐츠프이즈다. 그는 "춘향뿐만 아니라 중산동에 전통찻집이 많이 생겨 사람의 힘듦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춘향'의 주인장인 박효산씨. ‘보이차는 중산마을로’, 이것이 지난해 이맘때 즈음 찻집을 개업하면서 내건 캐츠프이즈다. 그는 "춘향뿐만 아니라 중산동에 전통찻집이 많이 생겨 사람의 힘듦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효산씨는 ‘춘향’이 상업화에 물든 공간이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찻집에 있는 여러 다기와 각종 차를 손님에게 내다팔지 않는다. “장사를 하지 않고 1년은 한 번 버텨보자”라는 각오로 찻집을 시작한 것이다. 박씨는 ‘춘향’을 상업 공간으로 조성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생계를 지탱할 수 있는 균형점으로 찻값을 ‘4000원’으로 정했다. 그래서 ‘춘향’은 1시간 있어도, 10시간을 있어도, 하루 종일 있어도, 단 한 잔을 마셔도 100잔을 마셔도 4000원이면 머물 수 있는 곳이 됐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리고 재수생, 삼수생들은 모두 공짜로 차를 마실 수 있다.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하고 푸근한 매력을 느낀 지역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이제는 사라지면 허전할 ‘사랑방’으로 가꾸어졌다. 그 이유에는 손님들이 찻집에 들어설 때 물건을 사야한다는 압박감을 덜어낸 박씨의 지혜가 있었다.

이러한 ‘춘향’이 지난 2일 조촐한 1주기 행사를 가졌다. 요양원과 부동산중계소와 술집과 편의점 간판을 비집고, ‘춘향’이라는 복고적이다 못해 이제는 초현실적인 이름의 녹색간판을 내건지 1년이 지난 것이다.

이날은 차를 마시고 대화하는 것에 더해 기타 선율이 더해졌다. 단골손님 중에서 통기타를 둘러매고 나타난 이가 있었으므로 다른 이들에게는 포크음악을 ‘생’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마침 이날 밤 9시경, 중산마을에 살고 있는 곽영일 교수가 진행하는 한국교통방송 음악 프로에서 “지금 고양시 중산마을 찻집 ‘춘향’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있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아바(ABBA)의 ‘Dancing Queen’이 흐르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날의 1주기 행사는 속도와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그래, 이러한 숨구멍이라도 있어야지’하는 위안을 주는 공간을 가졌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차는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 6대 다류로 분류될 수 있다.  각 차마다 다른 색뿐만 아니라, 다른 향, 다른 맛을 가지게 된다.
차는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 6대 다류로 분류될 수 있다. 각 차마다 다른 색뿐만 아니라, 다른 향, 다른 맛을 가지게 된다.
차를 우리는 주전자인 '다관', 차를 담아놓는 통인 '다호' 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차를 우리는 주전자인 '다관', 차를 담아놓는 통인 '다호' 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춘향’이 지난 2일 1주기를 맞았다. 이날 김창성 본부장이 김창성 월드산타문화예술협회 본부장이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이날 김 본부장은 '잊혀진 계절' 등 3곡을 연이어 불렀다.
‘춘향’이 지난 2일 1주기를 맞았다. 이날 김창성 월드산타문화예술협회 본부장이 통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이날 김 본부장은 '잊혀진 계절' 등 3곡을 연이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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