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고양일보] ‘문화의 민주화’는 누구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야한다는 문화향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90년대 이후로 유명 예술작품은 전국의 문예회관이나 예술전용관, 또는 향유자들이 있는 삶의 현장에서 선보여지는가 하면, 감상자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춰 향유할 수 있도록 바우처 형태로 다가가기도 했다. 

‘문화의 민주화’는 창작 주체와 향유 주체를 명확히 구분 짓는 개념이지만, ‘문화민주주의’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예술가 중심의 ‘미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반론이 전개된다. 이에 따르면 ‘문화의 민주화’처럼 향유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실현이 목표가 아니라 창작과정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을 논의 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You are artist!, 김영현) 전제 하에 예술가가 제공하는 예술미가 아닌 향유자 스스로가 내면에 갖고 있던 생활미, 즉 일상 삶 속의 수많은 삶의 기술과 경험치가 모여 다중이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이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예술가와 장인, 명인, 달인은 어떻게 차이가 나고, 예술에서의 미적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가, 아니면 미적 가치가 따로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러워진다. 물론 결론은 버킹검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은 어르신들의 존재다. 그분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음식과 생활소품들 그리고 각종 농사용구와 농사법, 노래와 놀이와 풍물과 춤사위, 사람들의 삶과 일상 안에  보석처럼 살아 숨쉬는 수많은 ‘예藝’와 ‘술術’이 존재한다. 그 안에 그들만의 ‘미美’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읽어내지 못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문화민주주의’는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으로 복원해 내는 것이 목표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즉 ‘프로페셔널에 대응되는 소위 ‘아마추어’ 예술활동이 생활예술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형편이다.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아마추어’의 전문성 익히기 교육과 실기 그리고 발표회가 대중화된 것으로 자리매김할 뿐이다. 

대부분의 시민예술동아리나 강좌에는 전문 예술가들이 강사로 초빙된다. 일반인들은 그들의 재능 익히기 교육에 몰입하고 발표회를 통해 1등 수상을 위한 경쟁에 몰입한다. 경연(競演)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비극이다. 경연은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고 늘어놓는 것이다. 늘어놓음으로 잔치가 벌어지고 축제가 만들어진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은 전문인 또는 조력자, 촉진자로 존재해야하고 더 나아가서는 굳이 그 역할들을 예술가들에게 맡겨야 할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새로운 자신에게 감춰진 새로운 ‘미(美)’를 발견하고 그 미의식 상태에서 그 미(美)를 확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편일률적인 기존 장르에 매달릴 필요도 없거니와 구태의연한 매너리즘에 빠질 필요도 없다. 다만 생활 속의 미를 새롭게  찾아낼 수 있는 혜안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대표적으로 2000년 초기에 ‘생활예술’, ‘삶의 예술’로 제안되었던 것이다.

실례로 필자는 2008년 광명문화의집에서 ‘시장통 & 사람들’ 이라는 주제로 주민대상 생활미술 프로젝트를 개설한 바가 있었다. 

내용은 문화의집 활동가, 참여 미술가, 그리고 몇 분의 조력자가 공동으로 ‘생활미술 & 삶의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이들과 주민 사이에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역할분담으로 노점상인들의 초상화 그리기를 미션으로 하여 시장 전시까지 마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물론 기획단계에서 예술가의 격심한 반발과 “내가 그림 배우러왔지 왜 이딴 걸 해야 되느냐”는 참여 주민들의 반감과 조력자들의 불평불만이 많았다. 그렇지만 활동가들의 성실하고 꾸준한 설득으로 와해 직전의 상황을 지혜롭게 이끌어갔다. 

우선은 시장에 가서 시장 상황을 보고 마음에 맞는 아줌마, 아저씨를 택하고 대화를 통해 프로젝트를 이해시키고 그 분의 사진을 찍은 뒤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그 과정에 필요한 기술적인 교육은 예술가가 담당했다. 또한 전시과정에서는 초상화 하나와 또 하나의 캔버스에 서로간 나눈 이야기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스토리텔링한 내용을 자유롭게 담아 같이 전시하도록 했다. 

물론 전시동안에 ‘주민 작가’는 자리를 지키도록 했고, 예술가는 재능기부로 시장 삼점가들의 가게명을 쓴 명판과 메뉴판을 나무로 만들어 기증하고 설치했다. 방송촬영도 있었고 영상의 주인공이된 상인들은 “TV에 나왔으면 하는 평생소원”을 이뤘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주변 동아리들의 장터 지신밟기와 협력 공연도 뒤따랐다.

행사의 대단원을 마무리한 뒤 뒤풀이 장소에서 참여했던 ‘주민 작가’들은 서로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술기운이었을까? 대체 무슨 감정이 북받아쳤기에 통곡을 할까? 그리고 대체 무엇이 통곡할만큼 그들을 감격하게 했을까? 그리고 왜 부끄럼만 타던 상인들은 그 서툰 초상화를 가보로 삼겠다며 가슴에 품고 가셨을까?

‘생활 속에 숨어있던 미(美)’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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