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의 시시콜콜13]  고양시의 문화·예술·교육과 경제, 그리고 도시의 재생을 말하다(1)
[나도은의 시시콜콜13]  고양시의 문화·예술·교육과 경제, 그리고 도시의 재생을 말하다(1)
  • 나도은 교수
  • 승인 2019.10.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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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고양일보] 고양시는 인구 백만이 넘는 거대도시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옆에 두고 사는 수준 높은 문화도시라 자부할 수 있는 도시다. 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 호수공원과 킨텍스를 가진 도시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고양시민의 문화적 수준은 어떠할까? 그 대답은 의외로 참담한 수준에 가깝다. 그 원인은 물적 인프라와 인적 인프라를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문화네트워크와 문화플랫폼의 저열함에 있다 

본고에서는 총 4회에 걸쳐 고양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영역으로서 고양시의 문화예술과 평생교육,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 등을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해서 망라해 애기해보고자 한다.

인류학은 정형화할 수 있고 기호로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능력을 문화로 정의한다. 동물학은 문화를 동물 생태계에서 위치하고 있는 인류의 행동양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고고학은 역사적 유적에 집중하고, 사회인류학은 문화를 사회제도와 인간의 상호관계로서 정의한다. 또한 문화인류학은 규범과 가치로서, 종교 또는 세계관으로 문화를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문화는 사상, 의상, 언어, 종교, 의례, 법이나 도덕 등의 규범, 가치관과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사회 전반의 생활 양식’을 말한다. 

반면 예술은 예술 활동(창작, 감상)과 그 성과(예술 작품)의 총칭을 말한다.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무용 등의 공연예술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작품을 다루는 학문은 인문학의 영역이다. 예술은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사람들에게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과학도 같은 구실을 하기는 하나, 과학은 주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예술은 미적 형상(美的形象)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예술 행위의 최종목표는 ‘아름다움, 미美’이며 그 미美가 어떤 ‘형상’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이 예술관을 크게 나누면 아이디얼리즘 또는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이 된다. 전자를 대표하는 사람은 헤겔로서 ‘미’는 예술가의 주관적 공상이라고 보는 데 대해, 후자를 주장하는 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서 미를 자연의 모방, 혹은 재현이라고 본다. 이 대립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美, beauty) 또는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기쁨이나 만족을 주는 대상의 특성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調和, harmony)로운 상태를 의미하나 ‘아름다움’을 고유하게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연의 사물 등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소박한 인상으로부터, 예술 작품에 대해 갖는 감동의 감정, 혹은 인간의 행위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해석의 위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중세에 이르러 인문과 과학, 철학과 함께 종교와 결합되어 독자적인 직업군으로 성장하면서 권력의 독점적인 도구가 되나 중세 후반 르네상스(인문주의)가 발흥하면서 점차 대중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주류세력으로 등장한 부르조아 계급에 의해 중세봉건제로부터 자본제 사회로 이동하면서 엘리트주의와 민중주의 논쟁에 기반한 순수예술과 대중(상업)예술 논쟁이 촉발됐다. 참혹했던 1,2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문화와 예술, 인문학과 철학에 대한 다양하고 심도 깊은 고민과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과 예술분야에 있어서의 ‘순수’ ‘참여’ 논쟁, 1960~70년대 리얼리즘 논쟁, 1980~90년대 민중예술과 공동체예술,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 논쟁 그리고 2000년대 들어와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한 지역(Locality, 기초와 광역체계)과 공간(Place와 Space)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2010년대 들어서서는 문화와 예술 교육분야 활동가(촉진자, 컨설턴트, 큐레이터, 모듀레이터, 퍼실리테이터, 코디네이터, PD 등), 중간지원조직,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공유경제와 사회적 자본, 가상공간과 4차 산업혁명 등 모든 분야에서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정책을 만들고,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편의에 따라 상업적,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던 역기능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혼란은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산업적 가치에 대한 무지와 혼선, 그리고 잘못된 사업방식에서 발생된다. 즉, 예술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 사회적 가치실현 과정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차이를 잘 구분해내지 못함으로써 발생되는 혼란이 그것이다. 전자는 전문적 직업군으로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의 주제설정나 제작과정 및 감상자들과의 교류에 있어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활동방식을 의미한다. 후자는 이미 주어진 사회적 가치의 실현 과정에 있어서 예술가가 자신의 능력과 조건에 맞춰 1/n의 역할로 뛰어드는 활동을 말한다. 이 때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넘어서거나, 때로는 자신의 전문성까지 무시되고 새로운 역할자로 배치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바닥을 긁을 줄 아는 포용력이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이런 살신성인의 자원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세를 갖추고 있는 예술가들이 이 새로운 유형의 기획자로 역할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상시적인 일거리와 안정된 일자리가 어느 곳에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문제는 80~90년대 촉발되었던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 논쟁의 주요 논란거리였던 ‘예술에서의 미의식과 생활에서의 미의식’의 차이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던 데도 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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