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고양일보] ‘시뮬라크르’는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우주의 모든 사건 또는 자기 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가리키는 철학 개념이다. 이 철학 개념은 포스트구조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프랑스의 들뢰즈(Gilles Deleuze)가 확립했다. 이는 공간 위주의 사유와 합리적이고 법칙적인 사유를 지향하는 20세기 중엽의 구조주의 틀을 이어받으면서도, 포스트구조주의가 이전의 구조주의와 구분되게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 '시뮬라크르'란 개념은 플라톤에 의해 정의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여기서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물인 인간의 삶 자체이고, 시뮬라크르는 이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복제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한 순간도 자기 동일로 있을 수 없는 존재, 곧 지금 여기에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발터 벤야민 역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에서 예술작품의 복제품에는 현존성, 즉 아우라가 없다고 하고 원본에서 볼 수 있는 아우라를 중시했다. 

그러나 들뢰즈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로'라고 규정하고, 여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했다. 들뢰즈는 이를 '사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는데,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라, 이전의 모델과는 전혀 다른 독립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시뮬라크르는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들뢰즈가 '시뮬라크르'를 의미와 연계시켜 사건으로 다루면서 현실과 허구의 상관관계를 밝힌 이후, 시뮬라크르는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들뢰즈는 그의 저서 『플라톤과 시뮬라크르 』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시뮬라크르는 퇴락한 복사물이 아니다. 그 어느 것도 원본이 될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복사본이 될 수 없는 즉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이 시뮬라크르로 플라톤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우상들의 황혼시대’를 만들고자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뉴스 보도가 그렇다.

뉴스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다시 재정리 한다는 점에서 실제가 아니고 만들어진 복제물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도된 뉴스 기사는 실제 사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소위 난무하는 '가짜뉴스' 논쟁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각자의 '시뮬라크르'에 대한 진실공방이다. 

결국 이는 시민들로 하여금 촛불 집회를 이끌어 낼 수도, 태극기 집회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즉, 뉴스 보도는 실제에 대한 복제로 만들어진 또 다른 원본, 시뮬라크르인것이다.

'강남좌파' 역시 이념의 시대가 생산한 '시뮬라크르'다.

386세대는 유물론과 맑스·레닌주의 그리고 베트남의 호치민과 중국의 마오쩌뚱 그리고 라틴아메리카(해방신학)과 북한(주체사상) 등의 혁명이론으로 이념적 무장을 한 후, 독재민주화투쟁을 통해 점차 세력화되었다. 소위 ‘운동권=진보’로 이미지를 다진 이들 세력은 87년 민주화투쟁으로 절차적 민주화를 헌법적으로 보장받게 되면서 40여년을 걸쳐왔던 구시대의 레짐을 마침내 극복하게 됐다. 이들 386세대의 한 갈래로서 열려진 화려한 강남시대의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사회저변의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성장하게 됐는데, 이들이 바로 ‘강남좌파’다.

하지만 '강남좌파'가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하기엔 한계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조국 사태’를 통해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조국사태'가 갖는 시대적 의미는 '조국'이란 인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바로 인간 '조국'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관계된 군상들에 대해 시대적 징표를 파악하는 데 있다. 

'강남좌파'는 시대가 만들어낸 '시뮬라크르'이고 그 실체는 엄연히 우리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실재(實在)한다. 강남좌파는 현실 속에서 원본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실재이고, 그 존재의 실재로 말미암아 원본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역사적 과제는 '실종된 원본'에 관한 논쟁으로 '강남좌파라고 하는 시뮬라크르'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원본'으로써 '시뮬라크르, 강남좌파'를 정면으로 상대해야 한다. 이것이 “‘검찰개혁’이라고 하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왜 꼭 ‘조국’이어야만 되는가?”하는 논리가 갖고 있는 부당함을 설파하는 근거다.

‘3기신도시개발’ 역시 대표적인 도시개발 관련 ‘시뮬라크르’다.

"역사적으로 '신도시'는 영국의 하워드(E. Howard)가 제창한 전원도시(Garden City) 이후 20세기 중반 이후에 이르기까지 도시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계획도시를 지칭해 왔다. 

따라서 도시개발은 중심부 일자리도시와 주변부 베드타운을 방사형으로 배치하여 도로망으로 연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12개 신도시를 개발할 때 초기단계부터 도로와 전철 그리고 기차 등 도로망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자족시설을 갖추는 계획도시, 자족도시로 설계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9년부터 추진된 수도권 1기 5곳 신도시 건설은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한국경제가 주택공급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도시화(Urbanization)와 산업화로 도시집중이 심화될 경우 인근 지역을 개발해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일본,  중국과 베트남 등의 신도시개발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후기 산업화가 진행되고 저성장과 인구 감소 등 문제가 부각될 때면 도시개발은 재차 구도심권으로 향한다. 바로 ‘재도시화(Re-urbanization)’ 다. 신도시가 쇠퇴하면서 구도심권으로 재차 개발의 축이 쏠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이다. 일본 롯본기 힐 등의 대대적인 도쿄권 재생사업이나 런던 브라운 계획 등이 그렇다.

그러나 정부는 서울집값을 잡기 위해, 30만호 주택공급공약 실현을 위해 3기신도시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1기신도시의 자족도시 실현도 난망한 상태에서, 특히 인근의 파주 운정 지역의 2기신도시 입주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3기신도시의 입주를 위해 지난 20여 년 간 시행하지 않았던 광역교통망이나 자족시설 완비를 또 다시 역설하고 있으며 개발과 관련해서 고양시의 일산과 덕양지역의 주민들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도시개발’이라고 하는 원론적 의미의 원본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1기, 2기, 3기신도시개발이라고 하는 ‘시뮬라크르’만 무수히 떠다니고 있다.

“가짜뉴스가 팩트가 되는 세상···”

"믿고 싶은 것만 믿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세상…“

“강남좌파처럼 의식과 실천의 괴리가 드러나도 역사적 과업 앞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

“3기신도시 문제처럼 서울시민을 위한 고양시의 난개발이 정당화되는 세상…”

이처럼 모든 것이 ‘원본과 시뮬라크르’에 대한 의미 없는 논쟁 속으로 빠져든다면, 역사적인 사건과 그에 대한 뉴스보도와 마찬가지로 그 어떠한 ‘사건’은 그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을 제외하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보도하는 뉴스도, 기록하는 역사도 모조리 시뮬라크르이기 때문에, 우리는 객관성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잡을 수 없는 객관성을 잡는 것은 플라톤이 저질렀던 의미없는 행동, 로고스 중심주의일 뿐이며, ‘시뮬라크르’를 무시하는 행동이며 ‘사회의 진보’를 방기하는 행위다.

따라서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수많은 ‘시뮬라크르’들의 작용과 그것들이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담론들 중에서 미래를 향한 진보의 칼날을 쥐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상들의 황혼시대’를 앞당기는 노력뿐이다.

 

[나도은]

- 고양시 일산서구 소상공인연합회장

- 프라임경제 사회적경제연구소장

- 협동조합 사람과사람 대표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예술치료학과 전)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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