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를 말합니다. "Kick the bucket" 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중세시대에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죽기 직전 그동안의 인생을 회고해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지 못한 후회스러움 속에서 떠오르는 리스트입니다. 어쩌면 그가 자살하게 된 숨은 동기는 바로 이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지 못 하거나,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인함이 아닐까 합니다. 

내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라면, 단순한 욕망으로 세 가지 정도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호화 유람선을 타고 크루즈(cruise)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외항선 항해사로 바다를 떠돌아다닐 때 가장 부러운 것이 유람선을 타보고 싶다는 것이었으니까요.

두 번째로는 스쿠버 다이빙(scuba diving)입니다. 두 발로 다닐 수 없는 수중에서의 여행은 환상적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여건이 마련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스카이다이빙(sky diving)입니다. 새처럼 하늘을 날으는 이것처럼 짜릿한 일이 또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는 행글라이더(Hang-glider)나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늘 창공에 떠서 바람을 타고 바람을 느끼며 바람과 함께 나를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연 초에 동해안에서 가족들끼리 만의 캠프가 있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목사인지라 서로가 갖고 있는 공통분모로 인해 우리들의 대화는 항상 풍성합니다. 둘째 날 밤엔 자신들의 목회 이야기로 시작되어 다음 날 새벽 4시가 지나서까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무르익어 끝날 무렵 큰 아들이 생뚱맞게 "갑자기 아버지의 묘비명에 새겨질 문구가 떠올랐습니다"는 말로 내가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그는 아버지이지만 한 인간으로 나를 바라볼 때 언제나 '바람(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식구들도 모두 한결 같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습니다. 내 묘비명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 <바람과 더불어 살고 가다!>

나는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로서 아버지를, 아버지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들이 나를 바라본 시각은 정확했고, 그리고 나 자신 그 이야기를 듣기 원했습니다. 바람과 같은 삶, 바람 따라 사는 삶, 바람과 함께 바람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 내 인생이라면 나는 흡족하니까요.

바람의 특징은 자유입니다. 그 무엇에건 막힘이 없습니다. 그 무엇도 그 바람을 잡아 둘 수 없습니다. 바람은 형체도,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존재합니다.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바람 부는 날 언덕에 올라 뺨을 스치고 지나는 '그 무엇'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람이니까요. 

내 삶이, 지나온 인생 여정이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생애가 성령의 부는 바람에 따라 바람과 더불어 움직여지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한 바람(願)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바람을 거스를 때 내 몸은 항상 강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그 넓은 바다 태평양 한 가운데서 거친 폭풍이 몰아치고 높은 파도가 브릿지(船橋)까지 치고 올라올 때 나는 그 파도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대들었습니다. 몸이 떠오를 듯한 강한 바람 앞에서 나를 한 번 쓰러뜨려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떴습니다. 그리고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인간을 만든 신을 조롱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의아해 할 만큼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는지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기억은 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화를 내고 있었고, 이러한 내 삶 자체가 답답하게 여겨졌으며, 그리고 한 편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의 갈망 속에서 너무 목말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 어느 순간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오는 세차고 강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그 바람은 나의 눈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고, 나는 계속 감탄의 탄성을 지르며 그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갔습니다. 그 길은 진리와 생명으로 이어지는 오직 유일한 길(The Only Way)이었습니다. 나는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진리의 바람이 나를 자유케 했습니다. 나는 더욱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바람을 따라 바람과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바람과 더불어 살다가 바람의 인도하심대로 그렇게 사라지고 싶습니다. 아니,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바람과 더불어 살고 가다"... 좋은 묘비명일 듯싶습니다.

사실 나의 묘비는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신이 없는 무덤은 의미 없기에 그렇습니다. 나는 오래 전 목사가 된 직후 나를 구원하시고 종으로 부르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가난한 목사로서 드릴 수 있는 것이 몸뚱이 하나뿐이라고 생각되어 Y대학병원에 사후 시체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은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바람에 흩날려 바람과 더불어 저 하늘을 나를 것이니까요. 주님 계신 그곳으로의 여행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날 나는 가장 가슴 벅찬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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