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귀화한 일본 출신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10일 고양시  덕양구청 소회의실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 출신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10일 고양시 덕양구청 소회의실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

[미디어고양파주] 한일관계를 연구하며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 출신의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10일 고양시에서 강연을 펼쳤다. 1956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공학부에서 공부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1988년부터 한국에 살게 됐고 1998년부터 독도관련 문제를 비롯해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이후 수업 중간에 무심코 “일본놈들”이라는 말을 뱉을 때가 있을 정도로 친한파다. 하지만 그는 친한파라기 보다 지한파라고 주장한다. 

고양지역이 정의당이 조직한 사단법인마을학교(이사장 이승배)가 주최하는 ‘공감, 우리시대’ 강연 차 고양시를 방문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날 일본이 최근 침략사상을 갖게 된 근원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설명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감정적 대응이 아닌 논리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덕양구청 소회의실에서 열린 ‘일본 보수, 그들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호사카 유지 교수의 강의내용을 요약·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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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보수의 본류는 1945년 일본이 패망했을 때 일본이 침략국가라는 사실을 수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화헙법(1947년)과 일본이 군정기를 끝내고 미국 중심의 반공진영에 편입된 것을 공식화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본이 경제적으로 부흥을 꾀하는 한편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는 것을 국가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는 일본 총리 시게루 요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는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

그런 일본 보수 본류의 대표적인 인물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1951년 9월 당시 서명했던 요시다 시게루(1878년 ~ 1967년) 일본 전 총리다. 그는 1945년 패전 후 일본의 재건, 국가전략 노선을 기초했다. 연합군 총사령부(GHQ) 점령 아래 일본 정권의 수장이던 요시다 시게루가 주장한 일본의 외교노선이 ‘요시다 독트린’인데, 이는 일본이 정치 군대가 아닌 자위대에 만족하고 안전 보장을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한편, 경제의 부흥으로 국제적 지위를 회복하는 것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일본 정계에 극우파들이 득세하면서 이러한 보수 본류의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2012년 경 2차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이후는 보수 본류는 몰락하다시피 했다. 현재 자민당을 점령하고 있는 이들이 보수 비주류이자 일본 극우파들이다. 일본 극우파들은 일본이 침략국가임을 부정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체제의 변경을 모색하며,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군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극우파들의 지향점은 결코 미래가 아닌 ‘1945년 이전의 일본’, 즉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며 침략전쟁을 일삼던 과거 일본에 매달려 있다. 이들은 태평양 전쟁을 백인의 지배 하에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는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니 인식 정도가 아닌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이들 극우파들은 메이지유신을 단행하고 아시아를 침략한 조슈번(야마구치 현) 계열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이들은 1945년까지 한국을 지배한 주류 세력 계열이다. 요시다 쇼인(1830년 ~1859년)부터 그의 문하생이자 한일병합의 선봉 세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일본 육군의 교황’ 야마가타 아리토모,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모두 조슈번 출신이다.

이들 극우파들의 정점에 있으며 역시 조슈번 출신의 아베 신조는 평화헌법을 수정하면서 치안 성격의 자위대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아베는 일본이 정치적 군대를 가질 수 있으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아베 신조로 상징되는 극우파들은 공무원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이 극우적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좌천시켰다. 현재 아베 신조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은 한국으로서는 큰 문제다.  

아베가(家)의 가족 사진. 사진 가운데의 남자 아이가 바로 아베 신조 현 수상이다. 어린 아베를 무릎에 앉힌 사람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 그리고 맨 오른쪽의 안경쓴 남자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다.
아베가(家)의 가족 사진. 사진 가운데의 남자 아이가 바로 아베 신조 현 총리다. 어린 아베를 무릎에 앉힌 사람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그리고 맨 오른쪽의 안경쓴 남자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다.
2012년 경의 아베 신조.
2012년 경의 아베 신조.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에 종속되는 한국의 경제구조 등의 일관된 흐름, 즉 일본 극우파의 원조가 바로 기시 노부스케(1896년 ~ 1987년) 일본 전 총리다.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 전쟁 이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쟁 범죄 용의자에서 일본 정계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인물이다. 안정적인 일본 통치를 위해, 경제계의 거물이었으며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협력을 약속한 기시 노부스케를 미국은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바로 아베 신조다.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 군대를 보유한 동북아 패권국을 다시 꿈꾸고 있다. 아베 정권은 ‘1945년 이전의 대일본제국 부활’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의 정계세습은 다반사다. 일본에서 세습된 의원 비율은 20% 내외이고 자민당으로 한정하면 약 30%로 올라간다. 일본의 정계세습의 또 다른 사례가 있는 데,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이며 현재 부총리겸 재무상인 아소 다로의 경우다. 일본 보수 본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외할아버지와 다르게 극우적 성향이 강한 아소 다로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 틈엔가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나치 헌법으로 변해 버렸다. 그 수법을 배워 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지금 일본의 분위기는 1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독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으로 1919년에 성립한 체제가 바이마르공화국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들은 ‘무너진 독일’의 재건을 열망하는 분위기에 휩싸였고, 그 분위기 속에서 히틀러가 등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극우세력은 ‘아름다운 일본’의 재건을 부추기고 있다. 이 부추김에 신도본청세력, 야스쿠니 신사 참배 세력, 극우 문화인 등 이른바 ‘일본회의’가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1945년 이전의 일본’으로 나아가는데 첫 지배 대상이 어느 나라이겠는가. 바로 한국이다. 혐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집단은 아베 정권의 친위대라고 볼 수 있다. 혐한 시위 움직임에 반대 입장에 있는 민주당 소속 아리타 요시오 참의원은 “2017년 도쿄 신 오쿠보에서 열린 혐한시위에서는, 그들의 플래카드에 ‘집단학살’을 상기시키는 표현들이 많았다. 지역에서도 나치 독일의 깃발 하켄크로이츠를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전국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어나는 일본의 경제보복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의 경제력을 추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현재 GDP지수는 일본이 우위에 있지만 구매력에 있어서는 양국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 지난해 IMF가 발표한 각국의 1인당 구매력을 살펴보면, 일본은 31위, 한국이 32위다.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평가한 2019년 기준 양국의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일본이 6위, 한국이 7위다. 작년은 한국이 7위, 일본이 8위였다. 일본 극우파들은 ‘1945년 이전의 일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이 경제력·군사력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은 일본 극우파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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