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명 : 처벌자 (The Punisher)

고등학교를 두 번 퇴학당했던 비행청소년 두테르테는 세 번째 고등학교에서 겨우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2년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그가 얻은 첫 직장은 다바오시청 소속 변호인 자리였다. 화려할 것도 자랑스러워 할 것도 없던 자신의 모습을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선거 포스터 "국민들의 마지막 희망 로두리고 두테르테"

“내가 다바오시 시장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 시민혁명과 제2의 인생

그러나 1986년 일어난 “피플 파워”혁명은 그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분노를 눈뜨게 했다.

그는 1988년 시장선거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으며, 지난 2016년 대선 때에도 피플 파워 혁명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이어나갔다. 그의 개성. 그의 힘. 그의 사랑은 “피플 파워”의 시대정신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수민족의 권익. 동성애자의 권익. 여성인권의 보호 등의 공약은 과거 엘리트 대통령후보들이 감히 손대지 않았던 “피플” 정책이었다. 여성들과 청년들은 두테르테에게 열광했다.

 

3. 오후 1시 이후 모든 공공장소에서는 금주

그를 믿고 싶어 하는 필리핀 유권자들에게 다바오시의 변천과정은 매우 상징적 존재라고 한다.

다바오시는 오후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공공시설에서 주류 판매금지를 선포했고, 공공시설 금연운동도 성공시켰다. 범죄와 마약으로 얼룩졌던 남부 필리핀의 도시가 이제는 필리핀에서 사업하기 가장 안전한 도시로 거듭나는 기적을 그는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4. 경찰이 뇌물 받지 않게 하려면? 당근과 채찍

빈곤과 박봉은 다바오경찰을 부정부패로 내몰고 있었다. 시장 두테르테는 이 문제를 당근과 채찍으로 해결했다.

위 사진은 모두 시장 시절의 모습이다. 할리 오토바이를 타고 매주 두 차례씩 도시를 다니면서 파출소를 무작위로 방문하는 그의 손에는 언제나 식료품과 생필품을 싼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는 파출소의 무기를 점검하고, 무고한 시민이 파출소에 구금되어 있지는 않는지 늘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다바오마약암살단(DAVAO DEATH SQUAD)은 단순히 마약상들을 살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3년부터 그는 마약범과 마약중독자가 자수할 경우 그 자리에서 2천 페소의 현금과 생활보장대책을 제시하는 운동을 동시에 진행시켜 나갔다. 돈은 늘 부족했고, 그는 <평화와 질서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여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처벌자(Punisher)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매력은 필리핀 시민의 매력이다. 그는 필리핀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나이에 첫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자, 이름 없는 시골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또 자신이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수많은 소년 중 한사람이었다는 용감한 고백을 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지금도 기득권세력과 조직폭력 세력들로부터 끊임없는 암살협박을 받고 있는 대통령. 그의 임기 6년 가운데 첫 6개월이 그렇게 국민들의 낭만적 애정 속에서 필리핀 하늘아래 표표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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