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미디어고양파주] "금수저는 항상 보수로 살아가야 합니까?"

지난번 청문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조국 후보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국회에서 끝장 회견을 진행할 때 기자들에게 던진 푸념성 발언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TV 화면의 조 후보 표정을 보면서 허탈한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을,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풀지 못한 난공불락의 검찰 권력을 풀어 헤쳐보겠다고, 그러한 전대미문의 국민적 과제를 해결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강남좌파였음"을 시인하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물론 필자도 대통령과 국회 권력, 언론 권력, 세습재벌의 전횡 등에 대해서 특히나 검찰 권력의 조정은 필요하다고 믿고 있으나, 그 일을 수행해야 할 사람이 왜 "조국"뿐이어야만 하는가?하는 부분이 동의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조 후보 스스로도 "나는 사람을 보지 않는다!"라고 외쳤던 윤석렬 총장을 강력히 지지했었고 자신도 그러함을 역설했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가 국민에게 내로남불로 특히 청년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이런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불거진 것임을 스스로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것이다.

더구나 조국 사태를 둘러싼 당과 청와대 그리고 지지자들 모두가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국민 촛불의 힘으로 적폐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들어섰다는 새로운 정권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기득권력의 모습으로 비추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과거의 관행을 빗대며 "그들도 그리했는데..."라며 행위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거나, "아무러나 우린 그들보다 낫다"라며 비교우위를 들먹이며 역사적 소명임을 내비치며 밀어 부치는 모습은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려는 집권세력이라면 과거엔 그리했을지 모르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겠다는 그런 참신함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검찰혁신의 아이콘으로 야심차게 내보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내뱉은 말이 하나하나 언론에 집중되고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며 인구에 회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떠오르는 의혹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응 논리와 해명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들이 생각의 단순함이나 진영논리를 넘어 80년대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감성적 흑백논리에 멈춰있다는 생각에 섬뜩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자회견장에서 토로하듯 내던진 말.... "금수저는 항상 보수로 살아가야 합니까?"이다. 즉 "금수저가 진보면 안되냐?"는 얘기고, 뒤집어 얘기하면 "흙수저는 모두 진보인가?"라는 말과 상치된다.

그야말로 이분법적 사고이자 명백한 흑백논리로 뒤덮인 사람의 사고에서나 가능한 발언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는 자본주의 사회뿐만은 아니다”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말한다.

그것과 그 조건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고다마 싯타르타나 간디의 경우에도 출신성분과 자신의 삶 궤적은 그 시대 일반적인 유형들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역사적 소명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스스로가 가진 모든 것들을 버렸다.

금수저가 진보가 되려면 스스로가 금수저를 버릴 때 가능한 것이다. 흙수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없이는 흙수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이 문제 삼는 것은 조국 후보가 강남좌파라서가 아니라 환골탈태하지 못하는 조국 후보의 자각되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가 국민에게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인지되질 않는 것이다.

마치 80년대 학생운동 시절에 행사를 마치고 저잣거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동료들이 그때...무척 먹고는 싶었지만... 막 시판된 생맥주집을 가지 못했던, 그리고 학부를 마치고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들을 보고 개량주의자 또는 배신자라고 낙인찍으면서도 행사 뒷풀이에 그들의 지갑을 바랬던 그런 철부진 이중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해프닝처럼 느껴지는 것도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듯하다.

며칠 있으면 우리 민족의 최대 민속명절인 추석(秋夕)이다.

이번 추석엔 제삿상 머리에서 이야기 나눌 꺼리가 많을 것 같다. 이야기 풍선도 가득하겠고 말싸움도 그득하겠다.

혹자는 진영의 논리로 또 어떤 사람들은 평등과 공정과 정의의 문제로 밥상을 걷어차는 볼썽사나운 일도 발생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우리를 형식상의 민주주의 시대를 넘어 내면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싶다. 시끄럽게 넘어가는 것이 조용히 잊혀지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필자가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느라 가족 몽땅 데리고 간 친구를 핑계로 캐나다 밴쿠버를 일주일여 여행했을 때 몇몇 캐나다인들을 만나 들었던 의외의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누구나 여행하거나 살고 싶은 나라 1~3위에 꼭 끼었던 나라가 캐나다였던 만큼 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긴 했다. 그런 캐나다인들에게 미국이란 나라와 미국인들은 항상 도덕적, 국가적 열위에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단 두 가지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의 자존심이 깍이거나 부러워하는 부분으로 잠재되어 있었다.

그 하나는 캐나다가 농업국으로 미국으로부터 공산물을 수입해다 쓰는 종속경제 문제와 다른 하나는 바로 캐나다에 없는 '뉴욕'이란 도시의 존재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뉴욕... 도시 자체로 봐서는 무질서하고 범죄가 많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그 도시만이 갖고 있는 역동성과 창조성에 대해 너무나 부러워하며 "우리 캐나다는 노인의 나라다!"라고 자조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과연 우리나라는? 하는 의문을 안고 귀국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의 한국의 역사는 뉴욕만큼이나 그런 역동성을 보여준 활력 넘치는 나라였다. 물론 민주화와 IMF를 거치면서 그런 역동성이 좀 잠들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 불안정과 정치·사회적 어수선함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부정적인 모습이 있다면 감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열차게 국민 앞에 까발려져야 좋다. 정교하진 않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수정되고 조정되고 정리되어 나가는 것이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천부적인 내공이다.

이런 과정도 지나갈 것이고 누적되고 창의적으로 조정될 것이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고 중첩되고 숙련되어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조국 후보가 국민과 역사에 대해 기여하는 바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나게 한 것이고 이 모든 문제를 노출시켜 민주화를 거치면서 터부시되었던 모든 문제들을 노출시켜 국민적 논쟁으로 확산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면 조국 후보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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