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시장은 대통령 출마를 거부했었다. 제일 마지막 순간까지 후보자 등록을 미루고 미루던 그였다.

<사진 출처  = KBS>

물론 그것은 전략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평범한 가정 출신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과 선택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해 평검사가 되어서 누구나 큰 고민 없이 빠져드는 유혹.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를 쫒기보다는, 억울하고 어렵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평검사 자리를 전전하며 현장의 슬픔과 부정부패를 온몸으로 느꼈을 그의 인생. 그것을 증명하듯 세월과 고난으로 찌든 얼굴.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쿨 하게 드러내 보이며, 세상이 하도 불공정하여 시장 자리에 출마하였다고 당당히 말했었다.

지금도 시장 자리, 국회의원 자리가 당연히 세습되고 있는 필리핀에서 그는 시민들의 선택으로 시장이 되었고, 국민들이 원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 50년간 선진국 필리핀의 발목을 잡아 후진국의 대명사로 만들어놓은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이던가? 바로 부정부패와 마약이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괴물과 싸우기를 간구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자신의 선거비전이자 존재이유로 선언했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그가 대선기간중 공원에서 시민들과 막춤을 추는 장면이 올라와 있다.

참으로 어설픈 춤사위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외모, 경력, 재산, 인맥, 화려한 언변과는 등지고 살아온 사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누가 필리핀의 적이며, 무엇이 필리핀의 정치적 과제인지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로 정확히 볼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필자는 그의 리더십을 산업현장과 거리에서 만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간다.

지금 필리핀항공이 남녘 하늘을 비상한다. 다양한 인종을 한 비행기 안에 이렇게 모아놓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승무원들 사이의 눈부신 공통점이 있다면 촌스럽고 몸에 잘 안 맞는 제복과 함께 강렬한 붉은 색 립스틱과 화사한 미소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

20세기 전반부 필리핀은 우리 식민 조선, 해방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던 강국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미국대사관 건물, 그 옆 오랫동안 문화관광부 역할을 하다가 이제는 박물관이 된 쌍둥이 건물 모두 필리핀정부가 빈곤국 대한민국에게 지어준 차관건물이었다.

우리가 태평양전쟁의 약탈 속에 신음하던 1941년 3월, 필리핀은 민항기회사 PAL을 설립하고, 지금의 마닐라 마카티시에서 바기오시를 나르는 처녀비행에 성공한다.

1949년의 일이다. 엘피디오 퀴리노(Elpidio Quirino) 필리핀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을 하며 자국 민항기를 타고 마닐라에서 미국본토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기록을 세운다. 더욱 부러운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가 창궐하던 시절, 필리핀은 막사이사이 인권상을 아시아 전역에 수출하며 아시아태평양의 정치적 리더국가로서 자리매김했던 역사의 추억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과 배고픔의 도전에 맞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구상하던 시절,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제트기 DC-8기종을 출항시키며 산업혁명의 미래를 현실로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필리핀 항공사 PAL은 세계 최초로 태평양 횡단 민항기 기내에서 영화상영이라는 혁신을 단행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자 필리핀 영자지 <THE PHILIPPINE STAR> 1면은 필리핀 경찰에 관한 기사들로 가득 했다. 1면 머리기사는 2년 전 발생한 엘리트 경찰특공대원(Police Special Action Force : SAF) 44명이 반테러 진압작전을 수행하다가 전원 몰살당하는 참극의 원인규명을 촉구하며 두테르테 대통령이 유가족들을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국민들의 눈물과 감사의 메시지가 뉴스와 SNS를 가득 메운다.

물론 정치적 공격대상은 전직 대통령 아키노이다. 아키노의 작전명령이 부적절했고, 정보유출과 리더십 미숙이 불필요한 참극을 가져왔다는 내용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진상규명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말했다. 유가족들은 손에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보이는 노력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라는 핵심 포인트를 에둘러 변명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권력기반은 자신이 시장으로 활약하던 다바오시에서 함께 동거동락했던 경찰이다. 마약과 싸우고 부정부패와 싸우기 위해 그는 군대가 아니라 경찰과 파트너십이 간절했을 것이다. 아키노와 역대 대통령들이 군부의 절대적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았다면,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래 경찰청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투테르테 대통령의 정적들은 별 하나에서 하루아침에 별 넷이 된 두테르테 대통령의 오른팔 경찰청장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1면 하단기사로 보도된 한인사업가 납치살해사건도 이러한 정치적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 이 곳 시민들의 시각이다. 특히 25일자 보도의 내용은 필리핀의 거대 범죄조직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경철창장 인터뷰였다. 아무래도 해답은 간결하지도, 신속하지도 않을 듯하다.

중요한 것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권력기반인 경찰청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국민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혼돈과 우려를 해석하는가 하는 점이다.

올해 초 <Digital>이라는 ‘SNS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SNS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국민들이 바로 필리핀이란다. 대부분의 필리핀 국민들은 facebook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80%가 넘는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 대통령을 사랑한다. 필리핀 사람들이 무지하고 무기력하여 자신들의 소망을 담은 우주의 뜻을 전하고자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SNS를 통해 정치와 자신과의 살아있는 관계성을 느끼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목숨을 앗아가는 마약이 밉기 때문이며,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층이 싫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엄청난 신뢰와 애정이 가능한가? 그는 또 어떠한 리더십의 고통과 대가를 치루고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필자는 구정 연휴 기간 동안 필리핀 땅을 밟으러 필리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하늘을 날고 있다.

오늘 밤 나는 낭만적인 꿈을 꿀 것이다.

※ Budots란 무슨 뜻?
한국에 강남스타일 댄스가 있다면 두테트테 대통령의 고향 다바오에는 부도츠(Budots) 댄스가 유명하다. ‘부도츠’라는 필리핀 단어의 의미는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다는 부도츠들의 댄스. 그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후보는 가는 곳마다, 거리에서 공원에서 이 춤을 시민들과 함께 추곤 했다. 당당한 막춤 스타일 그대로.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그 아재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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