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 이것이 요즘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있는 책입니다.

구수나기 류순이라는 일본 스님이 쓰신 글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책을 출간한 작년에 베스트 셀러로 등극하였고, 곧바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꽤 많은 수량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스님은 불교의 기본 철학을 가지고 글을 풀어나가는데, 마치 어느 심리학자가 심리 상담을 하듯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를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식견으로 위 책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인정욕구' (Social Recognition Desire)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 다섯 가지(생리-안전-소속-자기존중-자기실현) 욕구 중에서 자기존중의 욕구, 즉 자존감에 대한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타인으로부터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하고, 이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정욕구'라는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 인정받는 삶-부모로부터 부모의 기쁨과 자랑이 되는 귀한 자녀임을, 자녀로부터 지금까지의 삶의 족적들을 존중받을 수 있는 부모임을,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아내로부터 이 세상에 하나 뿐이 없는 자신의 분신임을 그리고 내 이웃들로부터 가장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 욕구가 채워지고 나서야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자기실현의 다음 단계로 약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의 내면 한 구석에서 뭔가 부대끼며 힘들어 하는 것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일이나 사람)들로부터 피곤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불교적 관조(觀照)의 자세로 그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초연하게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냥 쿨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식 방법입니다. 속세에 묻혀 결혼생활도 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하며 내 미숙한 감정 표출로 반응하고 아파해야 하는 속인(俗人)으로서는 너무 수동적이요 소극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건 기독교인으로서 목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반적 삶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 위 인간들의 세상에 내려와 인간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성육신(Incarnation)의 이야기이니까요.

그리고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겪게 되는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십자가를 통해 승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승리와 성공의 철학 또는 반대로 경쟁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살자는 메시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에 불교의 교리 역시 '빠져나오기 노선'에 해당한다고 여기지만, 경쟁이라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유지해야 할지를 확립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의 주범인 비교와 경쟁의식 그리고 이런 가운데 경쟁력을 길러 인정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차피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나의 선택과 도전이 새롭게 시작되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영어의 3C가 있습니다. Chance-Choice-Challenge (기회-선택-도전)입니다.

나는 항상 나를 둘러싸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속에서 내가 도약을 발판 삼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이러한 기회 중에서 내게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선택을 하며, 일단 내게 주어진 기회를 선택한 이상은 과감히 그 일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패턴이 지금까지의 내 삶의 방식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이 도전에는 모험도 따릅니다.

엄마의 반응을 갈망하는 아이의 눈빛과 생동감 없는 표정이 대조적입니다. <론 뮤익 작품>

위 사진,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론 뮤익(Ron Muek)의 작품에서처럼, 가슴에 품은 아이와 눈도 안 마주치고 먼 곳만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무표정한 얼굴과 엄마에게 강한 욕구를 드러내며 엄마의 반응을 갈망하는 아이의 눈빛과 생동감 있는 표정이 대조적입니다.

생동감은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이 따를 때 엿볼 수 있습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내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임할 것인가 하는 '자기 태도'를 결정함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결코 회피하지 않고 맞서 대항하며 반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힘은 결코 남을 꺾어 누르고 이기고자 하는 경쟁력과 전적으로 다른 의미입니다.

오히려 내가 낮아져 그 고난 속으로 들어감으로 그 문제 중심에서 강렬한 빛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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