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식 목사 (신생교회/고양자치발전시민연합 상임대표)
신기식 목사 (신생교회/고양자치발전시민연합 상임대표)

[미디어고양파주] 해방 후 74년, 그리고 6.25동란 후 66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온통 편가르기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북핵 해결을 위해 전례 없이 친북 화해 정책을 펼치면서도 광주 5.18을 왜곡한다는 야당 의원 제명을 주장하고 심지어 5.18을 비판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한다. 사상과 사고의 맹점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파쇼주의에 물들어 정치의 정도를 벗어난 것은 아닌가 싶다. 특히 일본에 대한 반일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주변 국가와 찬·반의 논리로 편가르기를 한다면 과연 한국 스스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구한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연상하게 된다.

해방 후 역대 정부는 나름 실리 외교를 구사하며 일본과 이웃 나라로 지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 일본은 먼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위안부 피해 사과와 강제 징용자 배상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 함대가 일본초계기를 조준했다며 한국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한 감정 못지않게 일본 내 혐한 감정도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4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3가지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청와대가 조용할 날이 없다. ‘조국’ 민정수석까지 나서서 연일 반일 애국심을 충동질하며 시대착오적인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다른 주장은 친일·역적이고 매국노 취급한다. 권력의 오만인지 아니면 실정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사명자이다. 부모세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식세대의 행복을 증진해야 하는 중대한 책임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단지 말로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에게 다시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지 않아야 한다.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소집시켜 놓고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탓만 할 일이 아니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는 기업인들은 청와대 보다 훨씬 현명하다. 정부가 도와주지 아니하여도 각각 도생의 길을 모색해 왔다. 세금을 내며 기업을 이끌어 온 이들은 권력자의 훈시를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성가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발표 이후 문재인 정부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지난 20년 동안 반도체 산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소재 국산화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비·부품·소재 기업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반도체 소재·장비 산업 육성책만 세 차례 발표하면서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에서 탈피하려고 국산화율 목표치까지 제시하면서 막대한 세금으로 개발비를 투입하였다. 그러나 정책의 일관성 부족, 개발비의 지속적인 집중 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최근에야 R&D 비용 세제 감면 발표를 하였다.

기업도 소재와 완제품의 세계적 분업 구조 속에서 기술 좋고 값싼 재료와 장비 수입에 안주해 왔다는 책임이 크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이제 와서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발표에 대하여 자유무역 질서를 위반하였다고 비난하는 것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격’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징용배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한 ‘중재위원회 설치’에 대하여 정부가 외교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위자료 지급판결 이행을 우선시하며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논리로 ‘중재위원회 설치’에 반대하였다. 한•일 정부간 합의로 구성한 100억원 규모의 ‘화해치유재단’을 부정하고 해체하였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반대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 돈은 일본 정부에 되돌려 줄 수도 없고 한국 정부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없게 된 우수꽝스러운 일을 자초한 것이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지원사업을 위해 일본 정부 출연금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설립된 재단이다.

이런 와중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통하여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여 이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로 지급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가 7개월 만에 처음 내놓은 '해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사자들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하면서 한일관계도 한 걸음 나아가게 하도록 하는 조치"라며 일본 측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논리도 명분도 부족하다. 10억원도 안 되는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위자료 금액을 앞세워 국격을 떨어트리는 제안이다. 그냥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위자료 지급 등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하고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 책임을 판시한 판결을 근거로 반복적으로 강제징용 사과와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리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셋째는, 노무현 정부에서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위원장 : 이해찬 국무총리, 정부위원 : 문재인 민정수석)를 구성하여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를 발간하면서, 일본에 다시 징용자 개개인이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고,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65년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2007년~2010년 강제징용 희생자지원법을 제정하여 징용 피해자 7만 2631명에게 6184억원을 지급한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년 5월 대법원(주심 : 김능환 대법관)에서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 이후 2018년 10월에 이르러 대법원에서 그 판결이 확정되어 국가 간의 협정과 법원의 판결이 충돌하게 되었다. 이른바 대법원 판결지연 책임을 묻는 ‘사법농단 프래임’이 만들어졌다.

문제인 정부는 외교적 협상을 요구하는 일본을 상대로, '삼권분립에 따라 사법부 판단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미국 등에서는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부 입장을 듣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는 '사법 자제'의 전통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법 농단', ‘적폐 청산’ 프레임이 횡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1965년 한일협정서,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백서, 2007년 강제징용 희생자지원법에 따라 징용 피해자 보상금 6184억원을 지급한 것에 근거해 보면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 판결한 징용피해자 5명 1인당 1억~1억5천만원 위자료도 문재인 정부가 원고 개개인이 판결문을 들고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강제 집행에 나서는 일을 방기하고 반일 판을 벌리는 것 보다는 일본정부의 중재위원회 설치 제안에 응하는 것이 당당해 보인다. ‘사법농단’, ‘적폐청산’ 같은 억지보다는 징용 피해자 위자료 지급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보여진다.

이번 일본 정부의 반도체 품목 수출규제 조치 원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징용 피해자 위로금 판결 자체에 대한 보복이 아니다.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한국과 일본 대법원의 판결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이냐 아니냐 또는 전략물자 수출 사실 여부는 논쟁의 핵심을 벗어난 사안이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한국에서 ‘일본상품 배격, 일본여행 중지, 식민지 지배 사과 및 피해 보상, 한반도 분단 조장 중지 등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전혀 이롭지가 않다. 반일감정과 행동은 미래지향적이 아니다. 친일(親日)•반일(反日) 논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시급한 사안은 실리적인 외교로 해결해 나가면서 이제부터라도 극일(克日)을 위한 내공을 키워가야 한다.

국회는 모조건 청와대 들러리를 서지 말고 기업의 경제적 손해를 최소화하도록 힘쓰고 신속하게 특별법을 제정해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면서 일본과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약소국 국민으로 겪은 고통과 상처를 덧내지 말고 치유에 힘써야 한다. 언제까지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대법원 판결과 ‘소녀상’ 뒤에 숨어 있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다면 일본 아베 총리의 중재위원회 설치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 판결을 넘어서서 강제징용자 위자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개인과 기업에게 짐을 지우게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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