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미디어고양파주] 요즈음 ‘자치분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논란의 핵심은 ‘귄력 분점’이다. 주민자치회와 자치경찰 그리고 교육자치도 그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하지만 ‘의식 전환’이 먼저다.

전후 70년 가까이 체화된 사회경제체제가 낳은 의식은 낡을 대로 낡았다. 이 의식이 이끄는 삶의 방식 또한 체제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탈북한 분들이 남한 사회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다. 

‘지방자치’의 한 축인 지방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과 기초의회의원은 대부분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다. 하지만 1등만 뽑는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유권자의 눈을 한번쯤 의식해야하는 절차가 있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주민들까지 포용해야하는,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를 넘어 주민의 공복이라는 공인으로서의 공적 책임이 주어지고 이를 충실히 수행해야하는 책무가 주어진다.

그러나 기초의회 시‧군의원은 중선거구제를 채택함으로써 유력정당에 공천된 출마예정자는 당력만으로도 안정적으로 당선된다. 이 때 유권자의 선택과정은 통과의례로 전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마예정자들은 지역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공천권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머슴’이 되는 것이 정치 구조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초의원을 공천하는 제왕적 권한을 갖는 국회의원, 또는 당협(지역)위원장들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혀 없다.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의원들은 출마과정의 처음부터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공천권자로부터 공천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주민이 아닌 공천권자에 대한 종복으로 기능하게 되는 불합리한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희망자들의 자유로운 출마를 보장하기 위해서 당의 공천권을 없애고, 유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거듭하는 현역의원들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다시 말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공천권자의 공천권을 없애는 한편, 이들에 대한  주민소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선출직으로서 대통령과 국회의원도 유권자의 뜻에 어긋날 경우, 유권자가 손수 끌어내릴 수 있도록 하는 국민소환제가 뒷받침되어야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정당민주주의 틀에서 특수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로 탄핵제도와 선출직 국회의원의 임기 보장이 필요하다. 물론 의원내각제처럼 다수당이 집권하고 정당 간 합종연횡에 의한 권력 분점이 가능한 정치체제 하에서는 국민소환제 유무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가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에 독점화된 법률 제‧개정권을 국민이 되돌려 받아야 한다. 즉 ‘국민발의권’의 실질적인 회복이다.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해 국민발의와 국민투표, 국민소환제가 통상 이야기되고 있지만, 실상 국민투표와 국민소환제는 대리자 선출과 관련한 유권자들의 피동적인 사후권리에 해당된다.

‘스님이 스스로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말처럼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는 국회가 스스로의 발목을 옥죄는 법률들을 입법할 리가 만무하다. 유권자가 스스로 발의, 입법할 수 있어야 국민에 뜻에만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을 국민이 알아서 선출할 수 있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대의제를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비례대표’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비례대표는 유권자가 직접 뽑은 선출직 국회의원이 아니다. 유권자가 정당을 선택하고, 선택된 정당이 유권자가 원할 인물을 추측해 대리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이 선택한 인물이 자질과 능력을 유권자가 검증할 수 없다. 정당이 선택한 인물이 잘못했을 때 끌어내릴 방법도 없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안정적인 견제장치로 선출된 지역구 국회의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국민들로부터 소환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비례대표는 여성, 청년, 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들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정치 신인들의 국회진입 교두보로서 자유민주주의 핵심적 가치인 '다원성'을 구현하기 위해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례대표제를 지역구 출마를 위한 발판으로 이용한다. 선출된 비례대표 의원은 국민들을 위하기보다 각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을 대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타개할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례대표를 아예 없애고, 지역구를 늘리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국회의원의 보좌진 수와 세비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역구 선거와 정당명부속 비례대표 선거를 동시에 하는 1인 2표제로서, 병합형 지역구 253석과 비례 47석으로 총 300석(지역구 대비 비례가 5.4대 1)의 의원 총수 제한을 두는 국민투표제를 가지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과 대표성 갖춘 인재를 등용한다는 헌법적 취지로 1963년 제6대 총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OECD 37개국 중 핀란드, 스위스 등 32개국이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고, 25개국은 순수비례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독일, 뉴질랜드, 헝가리 3개국이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초과의석으로 비례성을 담보하고 있고 1993년, 2011년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또한 헝가리와 스코틀랜드-웨일즈는 의석 추가형으로 비례성를 보완하고 있고, 한국, 일본, 독일 등 7개국이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를 병행하는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7개국 중 한국, 일본, 멕시코, 리투아니아 4국은 병립형 비례대표제, 독일, 뉴질랜드, 헝가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나치즘을 겪은 독일이 권력분산형 민주주의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봐야한다.

여기서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안에 대해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헌법 제41조 3항에는 “국회의원은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헌법에 전제되어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없애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1년에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문(2001.7.19. 2000 헌미 91.112.134(병합 전원재판부) “1인1표제 하에서는 비례대표제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189조는  위헌이라고 판단한다”)은 ‘1인1표제’라고 하는 단서 조항 때문에 비례대표제를 없애는 것이 헌법위반이 아니란 준거를 제공한다.

또한 우리 헌정사에서도 비례대표 선출을 중단한 적이 실제로 여러 번 있었다. 1973년 제9대, 1977년 제1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불채택,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다시 도입했다가 1996년 제15대, 2000년 제16대 총선서 1인1표로 전국구(비례대표) 배정했다.

다시 고양시로 돌아와 보자.

고양시 선출직에는 시장과 시의원 그리고 국회의원이 있다. 멀리는 도의원과 도지사 그리고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시의원과 도의원을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당협(지역)위원장이 공천하고, 2~3명을 뽑는 중선거구제 하에서 (가)번에 해당되는 출마자는 공천이 곧바로 당선을 보장하는 수혜를 입게 된다.

유권자가 선택해야 할 총선 출마자를 왜 당에서 먼저 지명해야 하는가. 기초나 광역의회의 시‧도의원을 선출직인 국회의원(또는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이 왜 먼저 공천해야하는가. 국회의원(또는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이 공(功)은 자기 것으로 과(過)는 남의 것으로 돌려대는 파렴치함을 왜 늘 상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원 팀(One Team)은 온데 간데 없고 원(One)만 오로지 남아 탈주민정치와 탈정당정치로 귀착되는, 협잡꾼들의 난장판을 왜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하는가.  

그래서 결국 필요하다면 유권자가 선출직 정치인을 직접 선택하거나 직접 끌어내리면 안 되는가. ‘국회’라는 벽에 부딪혀 이도저도 안된다면 유권자가 직접 법을 만들어 유권자가 원하는 정치판으로 새로 짜는 것을 ‘경우의 수’에서 누락시킬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닌가. 

2018년 6월, 전례 없이 야당이 몰락하는 지방선거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총102석 중 자유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1석, 정의당 1석으로 나왔고, 경기도의회의 경우 총 142석 중 자유한국당 4석, 정의당 2석, 바른미래당 1석이 나왔다. 고양시의회의 경우 총 33석 중 자유한국당 8석, 정의당 4석이 나왔다. 합종과 연횡, 정책대결과 연대 그리고 협력과 협치라고하는 정치예술은 실종되고,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다.

고양시 경우에도, 지난 정권에서 빚어진 수많은 부정과 비리에 얽힌 적폐에 대해 여야 없이 규탄하고 청산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선거 이후 주민들에게 보여준 선출직 단체장과 시‧도의원 그리고 그들이 속힌 정당의 행태들을 복기해보면, 과연 우리 유권자들의 세금으로 선거를 치루고 비용을 부담해서 이들의 자리를 보존해주고 지지해줄 필요가 있는가. 이러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한다.

요진 Y-City 특혜비리 건을 발본색원하고자 기세 좋게 설치했던 고양시의회 내 요진특위는 선거를 넘기면서 어디론가 실종됐다. 민선 7기가 들었어도 ‘기부채납 의무 존재 확인의 소’가 각하됐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김서현 시의원이 폭로했던 킨텍스 내 부지의 헐값매각 의혹도 오히려 자당의 거부로  특위설치가 원천봉쇄 됐다.

그리고 집권당의 국토부장관이 발표한 3기 신도시개발 문제에 반발하는 1기 일산신도시 주민들의 발표철회에 대해 고양시장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양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시정질의조차 허용하지 않는 초강수로 대처하고 있다.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일산을 떠나라!”는 막말까지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산황동 골프장 문제의 경우 이전 정권에 이어 현 정권에까지 지지부진한 대응으로 인해, 고양시의회 건물 앞 천막농성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고양시에서 연초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채우석 시의원의 음주사고 이후 탈당과 징계과정에서, 그리고 경우는 다르지만 지난달 발생된 자유한국당 김완규 시의원의 음주사건의 경우에서, 그 시의원을 공천한 공천권자가 당해지역의 유권자들에게 그 어떤 사과나 해명 그리고 책임지겠다는 자세 없이 유령처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울러 자유한국당의 경우, 자신이 공천했던 시의원의 ‘음주사건’에 대해 공천권자로서의 자기반성이나 공개사과는커녕 자신이 앞장서서 자당에 중징계를 요청하고 SNS를 통해 해당 시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상식 밖의 일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일삼는 행태가 일어나고 있다. 

홍중희 보좌관 임명에 따른 자격시비 문제로부터 시작된 갈등이 감사원 감사청구로까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발생된 이윤승 고양시의장에 대한 폭언과 이규열 부의장의 항의성명에 대한 징계협박, 지난 선거와 관련한 현 시장과 부시장 간의 폭로와 비방 등이 난무한 요절복통한 상황에도, 건설교통위 소속 시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행정감사 바로 다음날 해외연수를 떠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에도 정의당은 불참을 선언한 상태로 알고 있다. 참고로 시의원들의 해외연수는 작년에도 불거졌던 것이지만 소리 소문 없이 잠재웠던 사안이다.

그런 선출직 정치인이 유권자들의 뜻에 반하는 사건을 일으켰을 때, 그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고 책임을 어떻게 지울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요즈음 느끼는 무기력함을 생각한다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튀어나온 ‘원 팀(One Team)’이라는 구호의 의미가 얼마나 공허한가를 새삼스레 생각한다. 

‘마을에서 세상을 본다!’는 마을공동체운동의 핵심 구호를 떠올린다. 그리고 유권자의 삶과 유권자가 살고 있는 도시의 활력증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와 지방의회가 하나로 힘과 지혜를 합쳐주기를 원하는 뜻에서 조어(造語)가 된 ‘One Team’이라는 단어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를 생각할수록 진실로 ‘마을공동체’와 ‘One Team’을 갈구했던 유권자의 열망이 얼마나 무참하게 무너졌는지도 떠올리게 된다. 

창세기 18:26-33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가 마치 오늘의 고양시를 복사하는 듯하다. 소돔의 성읍에 50명의 의인만 있어도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는 여호와의 의지에 아브라함이 10의 의인만으로도 도시를 구원해달라는 간청을 바쳤다. 하지만 결국 소돔은 유황과 불로 존재가 사라지고 말았당. 이러한 구약성서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참에 '모조리' 바꿔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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