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우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사
정은우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사

[미디어고양파주] 성장형플랫폼 고양에서 주관하는 토크콘서트 5월 강사로 정은우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사가 아동학대라는 주제로 29일 강연을 앞두고 있다. 정 이사는 인터뷰에서 "피해 아동은 부모를 직접 신고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매우 다양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한 아이들의 시그널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신고 의무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는 의미심장을 말을 하기도 했다. 강연과 관련한 이모저모를 들어보기 위해 울산에 거주하는 정은우 이사를 찾았다. 아동학대의 실상과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방법 등을 중심으로 몇가지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원래 어떤 일을 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아동학대라는 어려운 주제를 선택했나?

원래는 아이 키우는 아줌마였다.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밥하고 청소하고 가끔 학교도서실에서 봉사도 하고 정말 편범하고 남의 눈에 띄지도 않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줌마였다.

어느 날, 제 주위에서 아동학대사건이 일어났는데 눈앞이 캄캄하고 손이 벌벌 떨렸다. 그 어린 것이 너무 불쌍해서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를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녔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동학대사건 이후에 평범한 엄마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작은 촛불이라도 켜야겠다는 생각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 정문 앞에서 촛불을 켰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아동학대예방 활동가를 시작하게 됐다.

● 강의주제인 우분트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우분트는 아프리카 반투족 언어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다.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반투족 아이들에게 근처 나무에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그것을 모두 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뛰어가지 않고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가서 다 같이 먹었다고 한다. 인류학자는 1명이 먼저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갔냐고 묻자 아이들은 ‘우분트’ ‘우분트’를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한명이 행복해 질 수 있나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아동학대를 보면서 “나만, 내 가족만 행복하면 행복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딘가에 슬픔 속에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으면 가능했겠지만 불행히도 내 주변과 우리들 속에는 학대당하고 폭력에 희생당하는 피해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불행한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이 우분트이다.

● 아동학대사건으로 평범한 사람을 활동가로 이끌어 냈다고 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상황이었나?

그해 울산과 경북지역에서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런데 사건이 너무 끔찍했다. 부모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혼내지 않고 키울 수는 없지만 혼나는 아이 얼굴만 봐도 마음이 짠하고 금방 후회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행동은 범죄이고 엄마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필 내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 피해 아이를 위해 촛불을 켜고 피켓 시위를 하러 나갈 때는 매우 떨렸다. 시위 현장에는 나뿐만 아니라 벌벌 떨면서 나온 다른 엄마들도 많았다. 벌벌 떠는 엄마들은 서로를 보며 점점 강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나를 활동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울산계모사건 피해자 아이 추모 촛불
울산계모사건 피해자 아이 추모 촛불

● 영화 '어린의뢰인'을 봤다. 보는 내내 많이 힘들었다. 영화이기 때문에 약간의 과장과 축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실제사건 활동가였다고 들었는데 현실은 어떠한가.

그렇지 않아도 울산에서 영화 '어린의뢰인' 시사회에 참여했다. 시청 관계자들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신고의무자 등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러 오셨다. 칠곡계모사건이 있던 그해 울산에서도 ‘서현’이라는 아이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영화관에 흐느낌과 한숨이 가득했다. 영화 어린의뢰인은 실제 학대당하는 장면을 많이 노출 시키지 않았다. 학대장면을 최소화 하고 배우 유선이 아이를 때리기 위해 머리를 묶는 것으로 다음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과장된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학대하는 부분을 많이 축소시켰다고 봐야 한다.

울산계모사건을 계기로 칠곡계모사건 가족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감사하게도 이 가족들은 오랜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해 잘 지내고 있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불쑥불쑥 고통을 재경험하기도 한다.

고양시 강연에는 어린의뢰인의 내용도 들어가 있지만 일반적 아동학대의 전형적인 사례들이 다 들어있다. 집의 현관문이 닫히면 우리의 가정은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가족들과 교감하는 행복한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폭력이 일어나면 공권력조차 막기 힘든 게 현실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신고 그리고 가해자와의 분리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도 제도가 미흡해서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상황이 좋지 않아 속상하다.

● 기억에 남는 피해사례가 있는가.

아무래도 울산계모사건과 칠곡계모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두 사건은 같은 해 발생했고 그해 아동학대특례법을 통과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소심하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사회로 뛰어 나오게 된 계기가 됐다.

울산계모사건으로 내 가정만을 돌보며 살기에는 너무 많은걸 알아버렸다. 그동안 내가 내 아이들만 예뻐하며 키우는 동안에도 피해자들은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그 아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예쁘게 커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울기도 많이 울고 마음이 편치 않다.

활동가라고 불러주는 일이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힘들지만 아동학대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살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 강의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나 이것 때문에 강연을 한다는 게 있는가.

내가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가정 내 아동학대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이다. 가정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법과 제도가 접근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반면에 가정 내 아동학대는 매우 은밀하고 지속적이어서 학대의 징후가 매우 심각하다. 피해 아동은 부모를 직접 신고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매우 다양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한 아이들의 시그널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신고 의무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신고의무자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가 모두 신고의무자가 되어 촘촘하고 안전한 그물망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강연을 하고 교육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아니고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잊어버린다. 결국 우리들 스스로가 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강연을 하고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으로 계속 아동학대 이야기를 하시는데 트라우마는 없는 가.

강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강의를 하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아동학대예방에 관심을 가지며 강의를 듣는 분들을 보면서 힘이 나고 강의가 끝나면 많은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강의를 너무 무겁게 하지 않는다. 강의가 가라앉으면 오신 분들이 마음이 불편해서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너무 슬프면 오래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명량한 성격을 무기로 싸워가고 있다. 열심히 하다보면 단 한명의 아이라도 아동학대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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