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미디어고양파주] 지난 2월 27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베트남, 하노이) 전격 결렬 이후 남북, 미중일 뿐만 아니라 국제정세가 전례 없이 요동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과정은 이랬다. 회담 성사 전부터 북한은 급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오판을 했다.

영변 핵시설 완전폐기와 실질적인 대북경제제재 전면해제를 맞바꾸고자 장장 60여 시간의 희망 열차를 타고, 중국을 거쳐 베트남 하노이에 당당히 도착했다. 영변 핵시설 완전폐기로 일부 대북경제제재 해제뿐만 아니라 정전선언·평화협정·남북연락소 설치,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남한 정부의 스몰딜(small deal) 전략을 믿었다.

국내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은 달랐다. 북핵 문제가 분초를 다툴 정도로 실제 그리 시급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판받고 있던 북핵 문제에 대해 분명한 선긋기가 필요했다.

트럼프의 요구는 예전에 없이 명확했다. 북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과거 핵(미사일, 핵탄두, 핵시설, 핵운반시설), 현재 핵(핵프로그램), 미래 핵(핵실험) 그리고 미신고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폐기, 핵물질 처리... 여기에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 및 시설의 신고-사찰-폐기-확인까지 요구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로서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수많은 안티(비판)에 대한 탈출구로 회담 결렬의 시나리오를 사전에 준비했다. 그리고 결렬을 선언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미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에 대해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이번 회담을 결렬시킨 기본 인물은 볼턴과 이용호이고 그가 밤에 기습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북한이 설득하려 노력했는데 (미국 측이) 또 주장했고 대화가 상당히 공방이 오갔다"고 했다. "김정은이 어정쩡한 순간에 북한에선 총대를 이용호가 멨고, 미국은 볼턴이 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역사적인 회담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영변을 완전히 내주고 상당한 수준의 대북경제제재 완화라는 선물을 들고 북한에 당당히 입성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남측은 남북통일을 위한 북미간, 한미간, 북일간 전략적 운전자, 중재자론을 다시금 부각시키며 다가오는 3.1절 기념식에 발표할 '신한반도정책' 문안작성에 골똘했다.

하지만 남북 모두 예상치 못한 회담 결렬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노이의 북미회담은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2월 27일, 하노이 회담 전후로 미묘한 사건이 둘 발생했다. 그 하나는 2월 26일, 스페인 북대사관 습격 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2월 28일, 지난해 2월 13일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과 그의 가족이 싱가폴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를 보호하던 단체 '자유조선'이 '천리마민방위' 명의의 '북한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 여파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월 22일, 북한 매체들은 남측의 통일부가 발표한 '2019년 업무계획'을 백해무익한 문서보따리라며 쓰레기통에 쳐넣으라고 했고, 북·미관계 '촉진자'론에 대해서는 미국 눈치만 보는 남조선이 무슨 힘으로 중재자니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느냐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이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북남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리고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로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날인 4월 13일, 제14기 1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상임의장직을 폐지하고 김정은을 헌법적으로 북한의 국가수반인 최고대표로 하여 향후 다국적 합의로 체결될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에 서명할 김정은의 헌법적 직위를 최고대표로 확정한 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북한)는 미국의 대답을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 단지 하노이회담에서처럼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닌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대답을 들고 와야 북미대화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뻘쭘한 냉각기 중, 지난 4월 11일, 트럼프 미대통령의 초청으로 또 한 번의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까운 시일에 제3차 북미회담이 개최되길 희망하고 그 전 단계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으며 빠른 시일 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주길 요청했다. 또한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DV; The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조치에 상응하는 일괄 타결식 제재 완화인 빅딜(big deal)과 단계적 타결식 제재 완화인 스몰딜 사이의 절충방안으로 굿 이너프딜(good enough deal; 충분히 괜찮은 합의)...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굿 이너프딜은 단계적 절차(Step by Step)를 밟아야 하는 빠른 과정이 아니어야 하며 현시점에서 미국은 확실하게 (북한에 대해) 빅딜을 이야기했고 그 빅딜이란 핵무기를 전면적으로 일괄폐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제3차 북미회담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금강산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재가동은 올바른 합의(right deal)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며 거부했다. 물론 정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공동연락소 설치 등은 꺼내지도 못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존 볼튼 보좌관은 17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무엇을 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징후라로 생각한다"고 대답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대해) 진정한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면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덧붙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국장을 지낸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ISI) 빅터 차는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나 미국과 관계 정상화가 아닌 오로지 제재 완화뿐이어서, 제재 완화가 지렛대의 핵심이 될 것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 제재 강화 법안인 '리드액트(LEED Act; 유류 거래와 같은 금수조치에 초점을 둔 법)' 등이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하게 대두된다"면서,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해 '제재'가 아닌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무기 비축량을 늘려왔고, 북미 협상 중에도 숨겨진 미사일 기지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에 따르면 CSIS(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조사 결과, 북한은 단거리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보관하는 최소 20개의 미신고 미사일 기지가 있었지만 북한은 북미협상에서 이를 신고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차 석좌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미국의 대북 전략이 '인내'로 선회한다면 북한의 핵확산 위협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여기까지가 미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비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북미협상은 공전 중이다. 미국과 북한은 당분간 별거를 선언했고, 북한과 미국 양측으로부터의 불신으로 남측의 역할도 한정되고 말았다. 여기에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미중 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역할에 미소를 띄우고 있고, 러시아는 다시 동북아시아 질서에 개입할 명분을 잡게 되었다. 다시금 북중러가 손을 잡는 모양이 연출되고 있고,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북핵문제 해결의 전도사로 낙점시켜주길 희망하고 북한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에는 '한'이 뻰찌를 당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런 이상기류 속에 현재 동북아 정세를 바라보는 각종 분석의 기조에는 다음 3가지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하나는, 문정인 대통령 특보와 정세현 전 장관을 통해 북한은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이고 반드시 통일을 이뤄내야 할 대상이고,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경제 엠바고로 현재의 북한을 만들어냈고 남측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경제·군사적 목적의 제국주의적 착취와 굴종을 요구하는 악의 축이며 종국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원치않는 존재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다른 하나는, 북한은 3대 세습을 통한 공산주의 괴뢰정권이고 부패한 군사독재정권으로 자국의 국민을 학살하는 인권문제와 핵개발을 통한 공포를 심고 대한민국을 적화통일하려는 우리의 주적이며, 미국은 대한민국을 사회주의로부터 구원하고 경제적 부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우리의 혈맹이라는 시각이다.

불행히도 다른 하나의 시각은 통일되어있지 않다. 위 두 시각에 대한 간극이 워낙 커서 오늘날의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분단의 기간이 두 세대를 넘어가고 있다는 현실에 기인하는 면도 없지 않다. 또한,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양 거대정당의 두 주류 정치세력간 북한 정권에 대한 이해에 대한 간극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다는 것도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남북의 미래에 대한 국가정체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남북이 오랫동안 갈라져 있어 이 격차가 큰 만큼 하루빨리 남북통일을 이뤄 서로의 간극이 더 벌어지지 않게 하고 서로 간 적대적 대립에 쓰인 비용을 절감하고 서로의 강점으로 윈윈하여 동북아 경영의 주역으로 나가자는 주장과 남북분단이 3세대를 거친 만큼의 긴 세월로 서로의 이 격차가 심한 만큼 섯부른 통일보다는 정치·군사·외교적인 독립성을 유지한 채 경제·사회·문화교류를 통한 서로 알기와 장벽 제거 기간을 거치는 남북 공존방안을 주장하는 두 부류가 정쟁의 한가운데 정치적 주류세력으로 존재한다. 그 한가운데 북핵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의 제2차 북미회담 결렬이 그동안 불투명하게 잠복해왔던 이 문제를 명확히 했고 미북이 달성코자했던 서로의 카드가 무엇인지도 명확해진 것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서로 어디까지 요구하고 어디까지 양보할 것이며 어떠한 단계를 선택·합의할 것인지에 대한 상호 간 물밑접촉이 필요하고 지난한 조율과정을 거쳐 Top-down 방식의 전격 타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운전자론, 중재자 역할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로 인한 남남갈등을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 대타협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내용적인 당사자 입장에서 남북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자기 통찰을 통해 동시다발적인 해결방안을 이끌어내야 한다.

서로 솔직해진 바탕에서 남남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한다.

미국은 한미관계를 '린치핀(Linchpin; 꼭 필요한 동반자)'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한반도 내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를 넓혀서 동북아시아의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 간 상호 역학 이동 관계로 폭넓고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에게 남북문제는 세대 경험과 공감의 격차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우리의 경제적 경쟁상대"일 뿐이다.

따라서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미래를 진지하게 담보하기 위해선 '통일'이 아니라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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