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사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반기문.

반기문 전총장 뒤 필자

그는 항상 위기 속에서 빛나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 또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한국-러시아 정상회담의 책임을 자기 혼자 짊어지고 차관직 경질이라는 가혹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공무원의 긍지를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눈물 흘리던 사람이다.

“차관씩이나 했던 사람이 무슨 국장직 보직을 받냐”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3년도 아니고 1년짜리 유엔본부 보직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한승수 대사 비서실장으로 “백의종군” 할 수 있는 기개와 용기를 갖추고 있던 참으로 보기 드문 외교관이다.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9.11 테러가 터지면서 온 세상이 부시의 반테러 규탄공세에 눈과 입을 막고 눈치 보고 있을 바로 그 위기의 순간, 유엔총회 사상 최단시간 내에 반미진영과 친미진영을 모두 아우르며 알 카에다의 반인륜적 테러행위 규탄성명 유엔 합의라는 불가능한 일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일벌레였다.

남들이 “참여정부에 왠 친미주의자”냐고 시비 걸던 즈음, 북한이 제2차 핵 위기를 일으키던 즈음,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이 노무현 정부 압박용으로 한국경제 국가신용등급을 낮추어야 한다는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루머가 파다하던 바로 그 즈음.

미국 정부의 입김에 따라 국가신용등급 몇 단계를 낮추는 간단한 방식만으로도 수백조원의 국부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갖춘 S&P(스탠다드 앤 푸어스), FITCH(피치) 등 신용평가기관 본사에 단기필마로 찾아가 담판을 지으면서, 한국의 잠재적 경제위기를 구하기 위해 남몰래 긴장하고, 남몰래 설사하며, 고독한 전쟁을 조용히 수행할 줄 알던 한국사람.

당시 그가 당당히 토해낸 논조는 이랬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대화의 틀 속에 참여하고 있는 이 상황이 어째서 한반도의 위기인가? 만일 한국경제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북한이 유발시키는 경제 불안 이라면, 북한이 6자회담을 깰 때... 그 때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감행하라. 지금은 아직 시기가 아니지 않은가...”

두바이에서 발행된 잡지 표지의 반기문

그런 그를 외교부 후배들은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의 선배와 친구들은 격려와 위로를 통해 그의 고군분투를 아끼고 소중히 했다.

그리고 그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온 반기문 전직 유엔총장을 향한 일부 언론의 무차별한 보도를 한 줄 한 줄 되새김질하며, 나는 상심의 마음을 다잡을 길이 없다.

그래.. 그것은 소통의 문제일 수 있겠다.

아니.. 혹시 언론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급히 사방에서 모여든 보좌진들의 오만함이 부른 사건사고일 가능성 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미망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만나는 인간 반기문에 대해 느끼는 오늘 이 순간 나의 소회가 전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고, 내가 알고 있던, 낭만 넘치는 사나이 반기문은 어디 숨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10년 세월동안 변해버린 것일까?

수많은 국민들과 함께 나도 지금. 바로 이 순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진정한 본 모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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