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희 팝피아니스트
이권희 팝피아니스트

[미디어고양파주] 미디어고양파주(MGP)가 매주 목요일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라는 연재를 해오고 있습니다. 고양시 식사동에 거주하며 풍동의 음악작업실로 오가는 이권희씨는 고양시의 오랜 이웃입니다. 6장의 독집음반을 낸 팝피아니스트이지만 솔로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록밴드인 ‘사랑과평화’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음악활동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6화 흑백 텔레비전

몇 년 전 딸아이와 영화 ‘호빗’을 본적이 있다. 4DX로 본 그 영화는 내가 어린시절에 상상했던  세계를  입체적인 영상과 감각으로 보여주었다. 요정과 난쟁이, 마법사의 모험… 그리고 이들이 사는 몽환적인 세상과 악을 형상화하면 있을 법한 괴물들… 두 시간 반이 넘는 동안 나도 영화 속에서 같이 살고 모험을 했다. 아무 힘 들이지 않고 이런 상상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사는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세대다. 

나의 어린시절에는 상상 속 세계를 경험할 것이라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카메라조차도 소풍이나 운동회, 졸업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카메라는 지금의 최첨단 카메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구식이었다. 그마저도 처음 구경한 것은 학교에 입학해서야 볼 수 있었던 선생님 카메라였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그래서 화면에서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는 것은 꿈같은 행운이었다. TV는 열 살 때 즈음 친구 따라 앞마을에 가서 처음 보았다. ‘와아’ 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작은 상자 안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웃고 싸우는 것을 본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TV가 내 눈에는 ‘요술 세계’로 보였다. 흑백 TV인데도 우리한테 환상 그 자체였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강 건너 마을은 서너 집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왜냐하면 전봇대가 큰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연결 공사만 하더라도 전기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마을은 철거 대상 지역이라 전기 혜택도 받지 못해서 TV를 보려면 강을 건너가야 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제일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전우’라는  전쟁 드라마였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전우를 보려고 아예 강 건너 마을 주변에서 맴돌며 전쟁놀이를 했다. 머리에는 철모 대용으로 낡은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잘라 그럴싸한 총을 만들었다. 그 나무 총을 어깨에 둘러메면 특공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어떤 애는 월남전에 갔다 온 삼촌의 군화를 몰래 신고 나왔는데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군화를 질질 끌며 다녔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그 아이는 갖은 폼을 다 잡았다. 

‘소대장’은 주로 싸움을 잘하는 아이가 맡거나 한 살 많은 형들이 맡았다. 소대장이 앞장을 서며 “나를 따르라!”하고 호령을 하면 나머지 애들은 동시에 “예!”하고 복창을 했다. 드라마 ‘전우’의 장면처럼 우리들은 전쟁놀이를 하며 길이 아닌 곳만 골라 숲속을 달리기도 했다. 혹은 짐짓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멀쩡한 땅을 가도 되는데 일부러 흙탕물로 지나갔다. 그러면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용감한 척 따라 가야만 했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애들은 “난 신발 배리면 엄마한테 맞아 죽는 기다~”하며  대열에서 이탈해 울먹거렸다. 그렇다고 집에 가지도 못하면서 입에 손가락을 빨고서 구경만 했다. 특히 여학생이나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면 난리가 났다 “우와! 용감하고 멋진데~”라고 한마디  던져 주면 그 순간은 특전사 정예요원이 된 것처럼 우쭐댔다. 그런데 그 우쭐대는 것이 지나쳐 높은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거나  바위 위로 올라가 아래로 마구 뛰어 내리기도 했다. 잘못 뛰어내려 발목을 겹질려서 주저앉아 우는 애도 있었고 착지를 잘못해서 꼬꾸라지는 애도 있었다. 그러면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 침을 꿀꺽꿀꺽 삼키기도 했다. 

드라마 ‘전우’가 방영될 시간이 다가오면 우리들은 슬슬 TV가 있는 집 주위로 몰려들었다. 괜히 TV가 있는 집 대문 앞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어쩌다 주인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 ‘이 때다’ 싶어  “저~ 아저씨~ 텔레비 좀 보여주면  안되능기요?”하고 얼른 옆에 붙으면 아저씨는 “안 된다. 집에 가라”하고 나무랐다. 

주말만 되면 진드기처럼 집 앞에 와서 귀찮게 하니 그 집 아저씨도 얼마나  짜증이 났겠는가. TV가 있는 그 집은 도시에서 이사를 온 집이라 우리 마을과는 별로 내통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아주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TV 좀 보자고 조른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집 아저씨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들판에서 온갖 장난으로 쳤기 때문에 옷도 엉망이고 씻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얼굴에다 냄새를 풍기는 시골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으니 말이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그래도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집으로 들어오라 했다. 그리고는 마루에 우리들을 앉혀놓고 TV를 밖으로 내놔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시간대에는 저녁 식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 때문에 그 집 내외분들은 저녁식사를 뒤로 미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우리를 배려 해주신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드라마 ‘전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이어지는 광고장면에서 또 얼이 빠져 있었다. 나는 어쩌면 드라마보다 광고음악에 더 솔깃해지며 관심이 깊었던 것 같다. 나는 광고 하나하나 할 때 마다 나오는 짧은 노래를 다 따라 부르곤 했다. 다른 애들은 내가 그걸 연습하고 따라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한번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가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애들아 이젠 집으로 가야지.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지”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이젠 집에 가자”하면서 하나둘씩 일어나 대문 밖을 나왔다. 그 때는 철없이 투덜투덜 대며 보여준 고마운 사람이라기 보다 더 못 보게 내쫓는 야박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TV를 본 후 마을입구에서 강을 건너 집으로 갈 때면  “나는 나중에 돈 벌어서  세상에서 제일 큰 테레비를 살끼다! 그때 너거들 늦게까지 텔레비전 마이마이 보여 주께 알았제?” 하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그리고  드라마 ‘전우’ 내용에 사로잡혀.  선임하사, 소대장, 각자 좋아하는 출연자 캐릭터를 흠모하면서  그 출연자들을 흉내 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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