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미디어고양파주(MGP)가 매주 목요일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인생콘서트’라는 연재를 해오고 있습니다. 고양시 식사동에 거주하며 풍동의 음악작업실로 오가는 이권희씨는 고양시의 오랜 이웃입니다. 6장의 독집음반을 낸 팝피아니스트이지만 솔로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록밴드인 ‘사랑과평화’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며 음악활동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제4화 황소와 동요 

이권희 팝피아니스트
이권희 팝피아니스트

우리 동네에는 소, 닭, 토끼, 강아지 등의 가축들을 기르는 집들이 많았다.  우리집에서도 소를 두 마리 정도는 늘 길렀다. 가축을 잘 길러 장에 내다팔아 돈을 버는 것이 어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겠지만, 농사를 주로 짓던 그 때는 소는 여느 가축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녔다. 소는 가축이라기보다는 거의 가족 같은 존재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아침에 농사일로 논밭으로 나가시는 부모님은 늘 우리들로부터 다짐받는 게 있었다. 바로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소들에게 여물 주는 시간을 엄수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학교 갔다 오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 집에 가방만 던져놓고 뛰쳐나가 실컷 놀다가 뒤늦게 ‘아차!’ 할 때가 많았다. 집에 와보면 소들이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앞에 놓인 여물통을 핥고 또 핥아서 윤기가 반들반들해져 있기도 했다. 

뒤늦게 소죽을 퍼주면 소들은 나를 고마운 듯 야속한 듯 야릇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막내인 나는 동생이 없었기에 덩치 큰 소가 동생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울적하기나 심심할 때는 소와 대화를 하며 때론 위로를 받기도 했다. 물론 말 못하는 소 앞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대장노릇을 했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날씨가 좋은 날엔 소를 들판의 풀밭으로 몰고 가서 자유롭게 풀을 마음껏 뜯어 먹도록 놓아주기도 했다. 소들은 맛있는 풀을 찾아 느긋하게 배를 채우고, 돌아올 때는 배가 불러져 있었다. 그럴 때면 언덕배기에서 소등에 올라타더라도 소는 짜증도 안내고 꼬리를 한 바퀴 돌리면서 어슬렁어슬렁 마을 입구까지 나를 태워주기도 했다. 그 황소 등에 타고 올 때의 기분이란, 세상에서 제일 근사한 자동차 탄 것 보다 더 재밌고 편안했던 것 같다. 

마을에 유난히 장난기가 많았던 괴짜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소를 말로 여겼는지 소등에 앉으면 경마 선수처럼 돌변했다. 그렇게 그 괴짜 형은 소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어린 우리들 눈엔 그 괴짜 형이 대단한 담력을 가진 전쟁 영웅 같아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발판이나 손잡이 같은 안전장치도 없었는데 어찌 그렇게 잘 타고 달렸는지 신기하다.

하루는 소들을 들판에 풀을 뜯어 먹게 한 뒤 잠시 틈을 타서 산 속 숲이 우거진 곳에 들어갔다. 정신없이 산열매를 따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에 허겁지겁 달려 가보니 소들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우리들은 순간 얼굴이 벌게지면서 “야! 큰일 났데이. 아버지한테 맞아 죽었다. 인자…우짜노…”하고 주위를 한참 찾아 헤맸다. 그리곤 마을로 뛰어가서 동네 아저씨들에게 “소가 없어졌니더…”라고 하니 아저씨들께서 “집에 얼른 가보거래이”하고 껄껄 웃으셨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헐레벌떡 집으로 와보니 “이게 왠 일인가?” 소가 느긋하게 여물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어찌된 거냐고 엄마한테 여쭈니 “소가 혼자서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더라”고 하셨다. 천만 다행이었다. 아마 천둥이 치고 소나기도 쏟아지니 소들이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집을 찾아  뛰어온 것 같았다. 그 일을 겪은 후 소가 대단히 영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름철이 되면 더위에 지쳐 소들은 뜨거운 쇠죽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대신 싱싱한 풀로 된 사료를 ‘생식’으로 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 풀을 베러 산으로 들판으로 다니는 것이 일이자 놀이였다. 풀을 베다가 배가 출출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굶을 일은 없었다. 집에서 뭔가 챙겨가지 않더라도 산에는 온갖 종류의 간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 별미가 있었다. 소나무의 줄기를 잘라서 겉에 거친 부분을 제거하고 입으로 껍질을 뜯어 씹으면 단물이 배어나왔다. 맛있어서 이걸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이것을 우리는 ‘송기’라 불렀다.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단물이 많고 맛있는 송기를 잘 찾아내는 아이도 있었고, 늘 마른 쭉정이만 뜯어먹곤 하는 둔한 아이도 있었다. 그때는 단맛이 귀할 때라 ‘송기’는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그 ‘송기’를 동생들, 누나들에게 주려고 몇 개씩 챙겨오기도 했다 .                                        

어느 여름방학 때 일이었다. 마을 어귀 동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며 노는데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지없이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에 이끌려 따라가 보았다. 근방에 가보니 벌써 많은 애들이 둘러 앉아 맛있는 과자도 먹어가면서 깔깔대며 즐겁게 모여 놀고있었다.  앞에서 진행하는 누나도 예뻤다. 우리처럼 시골에서 살지 않고 도시에서 온 여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 누나가 부르는 노래는 흡사 귀신이 나올듯한 고음이 들어간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노래였다. 창도 아니고 가요도 아니었다. 노래도 이상하고 그 누나의 표정도 이상했다. 여느 노래와 다르게 입을 크게 벌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웃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들을수록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코를 찔찔 흘리며 얼굴도 꼬질꼬질한 시골 아이의 눈에 비친 도시에서 온 그 누나의 노래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천사의 목소리가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삽화 = 이영은(zzari)
삽화 = 이영은(zzari)

한참 후에야 그것은 성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나가 있었던 단체는 선교 단체로서 전도차 우리 동네를 방문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아랫동네 아이들과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동요와 율동을 그 누나로부터 배우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동작이라 쑥스러워 깔깔대기도 하며 재밌게 따라하고 놀다보니 형들이 여러 가지 맛있는 과자와 음료수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때 초콜릿이라는 것을 생전 처음 먹어봤다. 쓴맛이면서도 달콤한 맛이 있어 얼굴 표정을 찡그려 가면서도 맛있게 먹곤 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서 콧노래로 흥얼흥얼하면서 낮에 배운 것을 몰래 흉내 내기도 했다. 내일은 예쁜 그 누나한테 반드시 칭찬을 받기를, 반드시 내 머릴 쓰다듬어 주기를 고대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튿날부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짧은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 누나나 형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 배운 동요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시냇물은 졸졸 졸졸~~~ 고기들은 왔다 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 꾀꼴”

어른이 되고 오페라 아리아를 들을 때마다 그 예쁘던 누나가 생각난다.  그 때 그 누나는 다니던 수많은 동네의 어디서나 흔하던 꼬마였던 나를 기억할까. 아마 기억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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