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2019년 2월 10일은 딸의 27번째 생일이다.

어린나이에 이곳으로 와서 공부를 하던 딸은 그동안 홀로 14번의 생일을 보냈다. 어린 딸을 미국에 보내놓고 딸의 생일 때 마다 마음이 아팠다. 돌봐주시던 큰시누이가 잘 챙겨주지만 엄마인 나는 이때만 되면 가슴속에 항상 찬바람이 불었다.

아이가 미국에 간 후에 일을 시작해서 휴가를 내기도 힘들었고 딸도 2월은 방학기간도 아니어서 얼굴 한번보기 힘든 시기였다. 항상 내년엔 꼭 봐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흘러갔다. 매년 2월 10일 딸 생일에는 딸과 환하게 축하의 통화를 하고 선물도 챙기지만 한국에 있는 나는 음식 맛도 못 느낄 만큼 마음 한편이 헛헛한 날이었다.

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14년 만에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14년 만에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 도착 후 다음날 밤에 동그랑땡을 만들기 위해 빚어 놓고, 잡채 재료를 모두 썰어 두고, 미역을 불려 놓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적응으로 힘들꺼라 했지만, 14년 만에 딸 생일상을 차린다는 설레임으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딸이 그동안 받지 못한 엄마 생일상을 한 번에 보상이라도 하듯, 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준비했다. 잡채와 동그랑땡이면 된다는 딸...

2월 10일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준비해 둔 재료를 볶아 잡채를 만들고, 빚어 둔 동그랑땡을 부치고, 불려둔 미역에 고기를 많이 넣어서 미역국을 끓였다. 캐리어 안에 꽁꽁 싸서 가져 온 직접 담근 김장김치와 석박지, 따뜻한 밥을 해서 14년 만에 생일상을 차려줬다. 딸은 오랜만에 나의 미역국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말을 반복을 하며, 먹고 있었다. 맛있게 아침을 먹는 딸과 뱃속에서 맛나게 먹을 보라와 사위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침상을 차릴 수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딸의 27살 생일상, 14년 만에 차려준 생일상이지만 딸은 행복해 보였다.
딸의 27살 생일상, 14년 만에 차려준 생일상이지만 딸은 행복해 보였다.

맛있는 소리를 연발하며 먹는 만삭의 딸 모습에 출산하면 지겹도록 먹을 미역국이지만 출산 전에 생일 미역국을 끓여줄 수 있다는 현실에 꿈만 같았다. 그동안 생일 때마다 자기가 미역국을 끓여 먹거나 친구들이 챙겨주는 인스턴트 미역국도 먹어보았고, 사위를 만난 후엔 직접 끓여주는 생일 미역국을 먹으며 보냈을 딸 생일이 떠올라 함께 하는 밥상에서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나도 맛나게 식사를 했다. 딸이 결혼을 하면서 이제는 사위가 생일을 챙겨주겠다는 사실이 든든했지만, 지금은 내 눈앞에는 딸과 사위가 내가 차려준 아침상을 맛있게 먹고 있다. 오랜만에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한 것 같아 흐뭇했다.

딸은 점심으로 킹크랩, 랍스터, T-본스테이크, 조개찜을 실컷 먹고 힘내서 출산하겠노라고 작년에 처음 갔던 식당을 원했다. 그런 딸과 뉴저지에서 제일 맛있는 블루베리 생크림케익을 준비해 온 사위 그리고 맨해튼에 있던 조카 둘까지 함께 해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조촐한 시간 속에 딸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먹는 것을 보라도 잘 받아먹고 힘내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보았다.

조촐하지만 행복했던 생일 점심식사
조촐하지만 행복했던 생일 점심식사

생일 축하해 대견한 울딸~

아침을 먹고는 삼각대를 세우고 셀프 모녀 만삭을 찍어야 한다는 성화에 수 십장의 연속사진으로 나와 딸 그리고 보라까지 3대가 찍은 첫 사진이었다. 어린나이에 이곳에서 혼자 잘 자라준 딸과 그 딸이 보라를 품은 만삭의 부른 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찍어본 사진이 평생 남겨질 추억의 한 장으로 건질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보라야~

할머니가 오는 날까지 또 엄마 생일도 지나도록 얌전히 뱃속에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는 네가 할매를 만나러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와도 돼.

생일을 맞이한 딸이 보라의 탄생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고 있다.
생일을 맞이한 딸이 보라의 탄생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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