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겸임교수

(전 청와대 외교보좌관실 행정관)

 

올해 초 출범한 “바른 정당(전 개혁보수신당)”의 영문이름을 둘러싼 외교가의 설왕설래가 눈에 띈다.

<연합뉴스>, <KBS World> 등의 언론은 “바른”의 뜻을 직역하여 “The Righteous Party” 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영문판(Korea JoongAng Daily)의 경우에는 “The So-called Barun Party(소위 바른 정당)”라고 표기하고 있다. 섬세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뭐지? 이 고민은?

옥스퍼드 사전을 읽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righteous의 뜻은 “morally right. justifiable”이다. 즉 “도덕적으로 올바른, 도덕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는”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바로 “도덕적”이라는 뜻이다.

세계 외교가에서 불편해 하는 이유는 ‘righteous’라는 단어가 세계 종교단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Righteous Among the Nations>라는 단체는 2차 대전 당시 나찌 독일의 홀로코스트 만행으로부터 유태인들을 구하는데 공헌한 비유태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각국에서 펼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유태계 기관이다.

지난 2000년 2월, EU 회원국 중 14개국이 오스트리아 정부에 대한 집단적 제제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행동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발단은 오스트리아 집권여당이 연정파트너로 극우정파(FPO)를 포함시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극우 즉 ‘extreme right’이라고 표현되는 정당은 대부분 자신들의 정치신념이 righteous라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제정치학상 ‘right, righteous’ 등의 단어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이 좋은 뜻의 단어가 정치적으로는 극우. 종교적으로는 이분법적 선악을 나누는 개념으로 악용되기 쉽다는 경험적 통찰력 때문이다.

바른 정당의 정체성은 보수정당이며, 우익정당이라고 표현되어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내외신이 ‘righteous’ 정당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방치하기 보다는 다른 대안을 미리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영문 표기를 기억하는가? 모든 언론이 합의한 공식 표현은 The ruling Saenuri Party였다. 무리하게 “새누리” 라는 한국어의 의미를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외국어로 직역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의 결론일 것이다.

 

외교가에서 단어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한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첫 외신 인터뷰로 CNN을 선택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선언한 바 있었고, 노무현 당선자의 “친북 성향”에 대한 검증되지 않는 시비가 난무하던 민감한 시기였다.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CNN측의 질문에 노무현 당선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6자 회담의 파트너로서 인내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무력충돌보다 훨씬 나은 전략”이라는 취지로 말이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문제는 한국어의 함축적인 표현이 번역되는 과정에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즉 영어식 표현으로 당선자의 의중을 정확히 전하자면, 북한이 6자회담의 상대방 즉 ‘counterpart’ 라고 전달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당선자의 표현을 직역하면 북한이 마치 partner 인 것처럼 불필요하게 오해할 소지가 높다.

실제로 통역과정에서 발생한 소통상의 오해로 인해 그날 CNN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악의 축이냐 파트너냐?>로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는데 한국은 파트너로 본다는 오해를 만들어낸 초대형급 오보였다.

 

여러 관계자들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한 끝에 비로소 한국과 미국 양측의 외교적 오해는 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생기지 말았어야 할 불필요한 사건이었다.

우리의 뜻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를 전 세계의 언론과 지식인, 외교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좀 더 정교한 검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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