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겸임교수

(전 청와대 외교보좌관실 행정관)

 

# 장면 1 -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요?

반기문 외무장관은 2005년 나이지리아 국빈만찬 헤드테이블에 나온 노란색 생선스프를 맛있게 먹으며, 쉴 새 없이 방문국 외교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 기업들의 에너지개발 사업진출권을 둘러싼 세일즈 외교의 현장이었다.

사실 좀 전에 나왔던 정체불명의 야채 샐러드에도 손을 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연출한 용감한 귀빈도 반기문 장관 한 사람뿐이었다. 

당시 오바산조 대통령은 호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만찬 음식에 아예 손조차 대지 않고 에비앙 생수를 작은 병째 자기 앞에 놓고 마시고 있었다. 

수십조의 개발권을 놓고 저울질 하는 전형적 아프리카 국익 비즈니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대체 겉보기엔 우아하기만 한 이 장면 어디에 목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인가?

 

#장면 2 - 하늘 뒤덮는 박쥐 떼의 똥 피하라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로부터 몇 시간 전. 한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의 대통령궁 공식 환영식장 앞마당에서 발생한 일이다. 

방문국 정상외교단을 환영하는 근위병들의 예포가 발포될 때마다 한국 측 정상방문단은 이상한 새 떼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놀라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이 점점 검게 물들어져 가는 기묘한 장면을 보며 반기문 장관과 외교관들은 자신들의 편안한 미소 너머로 공포를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계속 발포되는 대통령 의전 예포의 총소리에 놀라 하늘을 날기 시작한 생명체들의 정체는 바로 박쥐 떼였던 것이다. 

대통령궁 정문 너머 숲 속에서 시작된 검은 박쥐 떼는 점점 하늘을 덮으며 우리가 사열 받으며 서 있는 앞마당을 향해 검은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 아프리카와 유럽 여러 나라들이 조류독감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호실에서는 급히 우산을 찾아 똥 비 막을 준비를 했다. 만일 박쥐들이 하늘 위에서 똥을 싸기 시작할 경우 대통령궁에 서 있던 양국 정상내외분과 정상방문단 일행들은 고스란히 조류독감의 가능성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들어 반기문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며 메뉴얼에 없는 비상 상황에 허둥대는 동안 당당한 자세를 풀지도 않았으며 그의 얼굴에 낭만적 미소를 잃지도 않았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 역시 직관적으로 의연해 질 수 있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불과 며칠 전 이집트 국빈방문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여 카이로 시내로 향하던 나일강변에서 목격했던 참담한 모습을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다. 둥둥 떠다니던 닭들의 시체들로 넘실거리던 그 나일강의 공포를 말이다.

 

#장면 3 - 이집트 국빈방문과 조류독감

이집트 역시 조류독감으로 인해 온 백성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국 출국 며칠 전, 심지어 이집트 국빈방문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내부의 정보 분석 보고서도 떠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는 계속되어야 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 카이로발 기사에 따르면 이집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이미 수퍼마켓에 있는 생수와 식료품, 의약품 등을 몽땅 사재기하면서 전염병의 악화 가능성에 허둥지둥 대며 패닉 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왜 닭을 강에 버리는 걸가? 

이유는 이랬다. 한국과 달리 이집트 사람들은 집 옥상에 닭장을 만들어서 닭들을 키우는 일이 매우 일반적이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은 건물을 짓다말고 마지막 옥상 부분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해 두는 것이 관행처럼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건물이 완공되지 않는 한 세금도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아들이나 딸이 결혼을 하면 그 옥상에 또 한 층을 새로 올리고, 또 다시 그 위 옥상을 철근노출과 건설자재 방치로 내버려두며 닭장을 만들어두는 아라비아 상인의 꾀를 널리 공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집집마다 옥상 가득히 사람들이 닭들을 많이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와 같은 위생기준이란 먼 세상 남의 이야기였다.

조류독감에 죽어가는 닭을 살처분 하는 유일한 방식은 죽거나 죽어가는 닭들을 나일 강에 내다 버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세상이 잠든 틈을 타서 말이다. 오래전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면 4 - 이라크 알 카에다가 제시한 현상금

사실 조류독감으로 죽는 외교관의 목숨이나 알카에다의 저격으로 몸이 찢겨 죽는 외교관의 목숨이나 조금도 낭만스러울 것이 없는 절박한 노릇이다. 

그저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그 힘든 일들을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이상한 한국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나일강변의 공포로부터 약 1년 전인 2013년 말, 당시 청와대 반기문 외교보좌관실과 국방보좌관실은 이라크 파병에 대비한 키르쿠크 현장방문을 비밀리에 감행했다 (아르빌로 최종결정 되기 이전시점이었던 당시의 주둔예정지는 키루쿠크였다).

당시 터키는 부시 미국 군대의 자국영공 경유를 거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쉬운 선택의 여지를 잃게 된 우리는 우리의 젊은 병사들과 군수물자의 새로운 이동경로인 쿠웨이트로부터 최종 주둔장소 선정에까지의 모든 사항들을 직접 현장에서 꼼꼼히 확인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5개 종족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분쟁지역이었던 키르쿠크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미군 여단장은 우리를 상황실로 안내했다.

한 쪽 벽면 전체를 차지한 화면은 실시간으로 미군 인공위성이 쏘아주는 키르쿠크 현장 모습이었다. 

화면 도처에서 작은 꽃송이처럼 퐁퐁 터지다가 사라지는 흔적을 가리키며, 여단장은 저 점들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총기발포의 모습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다시 위기감이 몰려왔다.

현장방문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미군 여단장은 우리 목숨에 알카에다가 제시한 현상금 포스터들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현장을 반드시 답사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지 않은가. 우리의 청년장병들이 목숨을 걸고 군사작전과 민사작전을 펼쳐야 할 바로 그 현장에서 우리는 당당히 거리를 걸어야 했다. 

이라크 주민들과 낭만적 미소로 악수를 나누며, 우리 장병들의 주요 이동경로를 도보와 차량으로 최대한 확인해 나갔다.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표현을 우리는 가장 강력하고 생생한 형태로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반기문 외교관이 임기를 마치고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험지로 나설 때까지 다행히도 나는 목숨을 잃는 일 없이 이라크와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세계 75개국을 다니며 아슬아슬한 외교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것은 우리 방식으로 공유해야만 했던 축복이자 애국이자 영광이었다. 

국가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웃으며 살아 돌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외교는 그래서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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