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엠마 왓슨 주연의 영화 ‘콜로니아(2015)’가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칠레의 군부 구데타의 만행과 사이비 종교단체 수용소의 참혹함을 고발한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처럼 60년대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사회상을 고발한 영화 인생의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아비 모그라비’ 감독이 지난 9월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초대되었다. 관객의 이목은 ‘다큐의 확장과 실험’의 공통점을 지닌 두 거장 감독에게 쏠렸다.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

아르헨티나 해방영화의 대표자인 페르난도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 1936년생) 감독은 제3세계 영화사의 분기점이 된 다큐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로 유명하다. 제3세계가 실체를 갖기 시작한 60년대 남미에서는 ’민중‘을 소재로 한 다큐를 계급과 민족해방을 조명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정치적 폭력을 260분의 다큐로 다룬 ’불타는 연대기‘는 남미의 식민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뉴스, 사진, 고전음악, 상업광고 등의 다양한 제작 기법이 총동원되었다.

솔라나스 감독이 국내 대중에게 재차 주목받은 시기는 1998년이다.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 ‘구름’, ‘탱고 : 가르델의 망명‘, ’남쪽‘이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의 기존 다큐와는 사뭇 달랐다. 전투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았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필름은 프랑스의 이미지 나열방식의 누벨바그 스타일을 차용한 작가주의 상업영화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50년 영화인생을 쏟아부으며 천착한 ’민중‘에 대한 그의 열정은 멈춘 것일까.

“6,70년대 아르헨티나는 군부 독재 속 처절한 검열의 시기였다. 80년대 후반 이후의 사회는 과거에 비해 윤택해졌다. 하지만 민중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 속 양극화와 환경오염 등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래서 연출방식을 바꾸었다”라는 솔라나스 감독은 우회적 표현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다큐 ’사회적 약탈(2004)‘과 ’죽음을 경작하는 사람들(2018)‘을 통해 오늘날 ’민중‘의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회적 약탈’은 아르헨티나의 유례없는 사회경제적 몰락에 대한 필름이다. 당시의 붕괴를 다국적 기업과 국제기구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불어난 외채와 정치· 경제적 부패, 전직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의 국부 약탈 정책을 집중 조명하면서 경제력을 상실하고 기근과 병마로 국민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사회를 맹렬히 비난한다.

솔라나스 감독이 그동안 제작한 다큐의 포스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솔라나스 감독이 그동안 제작한 다큐의 포스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죽음을 경작하는 사람들’은 농업용 독소를 사용한 유전자 변형 농법이 초래한 환경적 영향을 살펴본다. 농산물 수확량을 늘려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농업용 독소를 사용하는 현장을 고발한다.

“’불타는 연대기‘를 열린 결말로 끝낸 건 민중이자 민족에게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권의 눈을 피한 것도 있지만. 당시 위험을 감수하고 영화를 제작하거나 관람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였다. 지금도 다루고 싶은 다큐 주제가 많다”는 82세 고령의 감독은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민중의 삶을 고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 모그라비 감독
아비 모그라비 감독

아비 모그라비(Avi Mograb, 1956생, 이스라엘) 감독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오니즘에 집착한 가족과의 갈등으로 절연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처럼 모그라비 감독의 시오니즘에 대한 강한 부정은 실험적 연출 기법으로 표현되어 왔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때론 괴상한 화면 구성으로 시오니즘의 신화를 해체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아랍 침략 전쟁에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는 모그라비 감독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 주제에 몰입해 왔다. 다큐 'Z32'는 이스라엘군의 만행을 알리는 조직이 보관한 증언의 분류번호인데, 이를 다큐 제목으로 삼았다. 팔레스타인 경찰 두 명을 살해하는 보복 작전에 참가한 이스라엘 군인에 관한 내용으로, 감독은 남자 주인공이 셀프 촬영을 하도록 한다. 

그런데 주인공의 얼굴 표정은 가면 뒤로 가려진다. 주인공의 정체와 표정을 확인할 수 없어 다소 답답함과 동시에 가면이 전달하는 다소 섬뜩한 모습은 관객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는 과정으로, 이후 주인공 실체와 가면이 병치되면서 끔찍한 작전 수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혼돈에 빠진 개인의 피폐함을 드러낸다.

이처럼 ‘시오니즘’ 주변 이야기를 풀어내는 도발적인 실험의 원천은 어디일까.

“좌절이나 실패,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만날 때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주저없이 작품 제작으로 활용한다. 관객이 이를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Z32'의 경우 주인공에게 제공한 대사는 없었다. 단지 지문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 한다’가 전부였다. 등장 인물이 군인이었기에 모자이크 처리를 요청했지만 이를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주인공의 얼굴 표정이 없다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걸림돌 상황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주인공 얼굴을 은폐하면서도 표정을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마스크가 그것이다”라는 모그라비 감독의 다큐는 시오니즘 오류에 대한 1인칭 독백이자 고백에 가깝다.

모그라비 감독이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는 'Z32'의 캡처 화면이다. 영화가 궁금하다면 검색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모그라비 감독이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는 'Z32'의 캡처 화면이다. 영화가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아비 모그라비로 검색하면 해당 다큐를 감상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제10회DMZ국제다큐영화제 기간 중인 9월 14일에 <미디어고양파주>, <경인일보>, <씨네21>, <한국일보>가 진행한 오픈 인터뷰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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