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15만 평 헤이리 예술마을(이하 헤이리)은 1997년부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지구에 조성된 예술인들의 거주와 창작ㆍ전시 공간이다. 파주 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 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명칭을 따온 '헤이리'는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 명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헤이리는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9일간의 <헤이리 판 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축제의 중심에는 한상구 신임 이사장이 있었다. 2003년 헤이리로 이주해 한스갤러리 관장이기도 한 이사장은 헤이리 17년 지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두 딸은 장성해 장녀는 출가했고, 30대였던 한 이사장은 50대가 되었다.

한상구 헤이리예술마을 신임 이사장
한상구 헤이리예술마을 신임 이사장이 인터뷰에서 헤이리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MGP : 지난 3월 헤이리 이사장으로 당선되었다. 어떤가.

한상구 이사장(이하 한 이사장) : 생활과 예술 공간이 한곳에 위치하며 문화예술의 창작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못해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개성 강한 마을 구성원들은 모두 동일한 꿈을 가지고 전 재산을 투자해 땅을 매입하고 터를 다지고 집을 지었다.

이웃 간의 담장도 없었다. 집을 짓다가 나무를 만나면 베지 않고 상생의 구조로 건축했다. 문화예술이 지닌 유연함과 진보성으로 이곳 헤이리에 정착한 사람들. 20년이 지난 지금은 통일동산에 온기를 불어넣은 장본인이라는 자부심은 조금은 빛이 바랬다. 고민이 많다.

MGP : 헤이리 예술마을,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한 이사장 : 순수 문화예술 입주 공간에 대한 약속은 법적 구속력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예술 소비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러들면서 초기의 꿈동산은 삐걱이기 시작했다. 일부 문화예술 공간은 연 면적 60% 이상의 예술 공간의 건축 규정은 허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슬며시 상업공간으로 둔갑하면서 초기 헤이리 정체성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살림집을 비롯해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 예술 건축을 짓기 시작해 2006년 100여 채의 건물이 완공되었고, 현재에는 220여 채가 완공되었다. 340가구까지 전입 가능한 상황이지만 이곳을 떠난 사람, 떠나려는 사람이 생겨났다. 나도 그랬다. 그런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사람은 두 딸이었다. ‘헤이리가 좋아요.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이사장으로 당선되기 이전부터 헤이리 이장과 사무국장, 감사, 예술위원장, 상임이사직을 수행해왔다. 살면서 마을 주민들의 이견을 좁히고 벌어진 문제점들을 봉합하는 일을 해왔다. 김언호 초대 이사장이자 현 한길사 대표와 이기웅 출판단지 명예 이사장이자 열화당 대표가 영감을 얻었던 영국의 헤이온와이(Hay-On-Wye) 책마을 이상으로의 완성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헤이리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한상구 이사장이 헤이리 연감이 정리된 사무국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상구 이사장이 헤이리 연감이 정리된 사무국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MGP : 2003년 첫 헤이리 페스티벌. 헤이리가 세상과 소통한 첫 통로였다. 가치와 변화는.

한 이사장 : 헤이리는 복합적인 공간이지만, 입주민과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보면 문화예술로 정체성이 모아진다. 생산과 소비의 지향점도 문화예술이다. ‘생산과 소비’, 양면을 모두 충족시키고 외부세계에 헤이리를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축제가 기획됐다. 바로 ‘헤이리 페스티벌’이다.

첫 페스티벌은 헤이리가 건축 중이던 2003년에 열렸다. ‘헤이리 판 페스티벌’로의 이름 변화는 2006년부터다. 2003 헤이리 페스티벌은 환경미술·전시·공연·건축,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호불호가 갈렸다. 어려웠다.

2006년의 헤이리 판은 ‘국제 크로스오버 아트 페스티벌’로 공연과 시각예술이 어우러진, 문화예술 전반의 장르가 만나고 융합되는 '예술 판‘을 만들자가 목적이었다.

2009년부터는 페스티벌의 성격이 바뀌었다. 종합 문화축제인 ’헤이리 판 아트 페스티벌‘이다. 헤이리 입주 작가와 공간에 집중됐다. 이전에 헤이리 페스티벌이 해외 예술의 동향과 외부 유명 예술가의 개념 위주였다면, 2009 ’헤이리 판 아트 페스티벌‘부터는 헤이리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나 작가 연합전 그리고 관람객이 눈으로 보고 느끼는 형태의 참여형 프로그램이 개발 강화되었다.

2018 헤이리 판 아트페스티벌의 참여 프로그램에 몰입한 방문가족 모습. 헤이리 사무국 앞에 설치 할 우드벤치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18 헤이리 판 아트페스티벌의 참여 프로그램에 몰입한 방문가족 모습. 헤이리 사무국 앞에 설치 할 우드벤치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올해 헤이리 페스티벌 기간 중 헤이리 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20회째다.
올해 헤이리 페스티벌 기간 중 헤이리 오케스트라의 공연 모습. 20회째다.

MGP : 올해 페스티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한 이사장 : 헤이리 페스티벌은 목표와 과제에 따라 축제 형식과 성격이 조금씩 변해왔다. 새로운 모색이 입주 작가(주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진화 중이다. 헤이리 위상에 걸맞게 계절별 혹은 주제별로 세분화 계획도 논의되고 있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평화‘로 잡았다. 남의 한강과 북에서 흐르는 임진강이 만나고, 개성ㆍ서울을 잇는 생태문화벨트에 자리한 헤이리는 남북문화 교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문화단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이웃, 친구 그리고 민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축제에 담았다.

영국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아마추어 프린지 축제 거리 장면. 사진=pixabay.
영국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의 아마추어 프린지 축제 거리 장면. (사진=pixabay)

MGP : 10년은 집 짓기, 10년은 생존기로 헤이리의 20년을 정리했다. 헤이리 3.0으로 볼 수 있는 앞으로 10년의 모습은 어떻게 보나.

한 이사장 : ‘남북문화교류’의 요충지다. 관련 센터의 건립을 파주시와 경기도에 요청한 상태다. 헤이리의 미래 10년은 마을 정체성의 확대다. 초기 200여 억 원의 기금으로 20년 동안 운영되어 왔다. 이제는 헤이리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관광특구’지정에 대한 건의를 지난 7월에 했다. 220개의 문화예술 공간을 탐방할 여유로운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숙박시설’ 건립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볼거리와 체험거리 가득한 헤이리의 문화예술 자원의 제대로된 소비와 방문객의 쉼을 위해서다.

현재 헤이리는 70평 이상의 숙박시설은 허가되지 않는다. 관련 조례 제정도 지역 인구가 50만 이상이어야 한다. 부득이하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주민은 적발되어 천만 원 대의 무거운 벌금 사례도 있었다. 헤이리 내부 혹은 인근의 가족 단위의 부띠끄 형태의 숙박시설은 방문객과 주민 모두의 간절한 희망 사항이다.

MGP : 헤이리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참고하는 모델은 있는지.  

한 이사장 : 영국의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을 참가하고 왔다. 초대작가와 아마추어·비초대작가의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진 장기간의 축제가 가능했던 요인 중에 중요한 사항은 숙박시설이었다. 이점은 헤이리 성장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연 120만이 찾는 헤이리. 문화예술 인프라의 내실화와 함께 관광특구 선정이 최우선 과제이자 나의 제1호 미션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한 한 이사장은 어릴 적 기타 레슨으로 모든 종류의 기타 연주에도 탁월한 연주 솜씨를 뽐낸다. 현재 한스갤러리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며 미니어처도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준 것‘. 헤이리 라이프에서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기억에 대한 한 이사장의 짧고 단호한 대답이다. 고양예고 1회 수석입학생인 장녀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며 헤이리 오케스트라의 정식 단원이다. 또한 아람누리 오케스트라의 비상임 연주자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마친 한 이사장은 고양 아람누리에서 연주 리허설을 마친 장녀 픽업을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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