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10월 9일 한글날 오늘은 명성산에 오른다. 명성산은 억새가 무성해 가을 산행지로 인기가 높다. 고양시에서 오전 8시경 출발하여 산행은 10시경에 시작하였다.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경계한 산으로 정상 높이는 923m이다. 명성산(鳴:울 명, 聲: 소리 성) 혹은 울음산은 통일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산을 지나 금강산을 갈 때 보고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궁예가 왕건과 최후의 격전을 벌이다 크게 패하여 온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고 해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경사가 급해 산행이 상당히 어려운 편이나,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주변에 산정호수, 백운계곡, 자인사, 승진훈련장, 한과문화박물관, 평강식물원 등이 있다.

명성산 등산은 주말(토요일 10:00~), 일요일, 공휴일에 정상적인 등반을 할 수 있다. 군부대 사격훈련이 있는 평일에는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군부대에서 입산을 제한하고 있다. 사격훈련 여부는 사전에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에 확인 후 산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등산 코스는 산정호수 근처 상동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시선폭포 – 여우봉 – 등룡폭포 – 억새꽃군락지 – 궁예약수터 – 팔각정 – 삼각봉 – 명성산 정상에서 다시 삼각봉 – 팔각정을 거쳐 자인사로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하기로 했다.

주차장
상동주차장에서 출발. '명성산 억새밭 가는 길'이라는 현수막이 잘 보인다.

등룡폭포 가는 길에는 제법 단풍이 자태를 뽑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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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예쁘게 물들었다.

등룡폭포 근처에는 더욱 다양한 단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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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룡폭포 근처 단풍 모습

등룡폭포는 이중폭로 혹은 쌍룡폭로하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기암절벽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데, 용이 이 폭포수의 물안개를 따라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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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룡폭포의 모습. 위와 아래 2개의 폭포가 있다. 등산객은 이곳에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등룡폭포를 지나 힘겹게 올라가면 명성산 억세군락지가 나온다. 이곳은 2016년~2017년 사이에 국비와 시비를 합해 총 15억을 들여 포천시에서 조성한 등산로이다. 억새 군락지가 등산객으로부터 훼손되지 않게 관람 코스는 나무 데크를 깔아 잘 조성되어 있다. 이번주 토요일(10월 13일)부터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억새 군락지는 억새바람길과 억새풍경길로 나뉘어 한바퀴 돌도록 되어 있다. 모두 중간에 팔각정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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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 억새바람길 입구

억새의 다른 이름은 '새' 또는 '으악새'라고도 한다. 억새는 전국 산이나 들에 있다. 이점에서 습지, 하천가, 연못 가장자리 등에서 자라는 갈대와 다르다. 억새는 9월~10월 사이에 꽃이 피고, 높이는 1~2m 정도이다. 억새의 좁고 긴 잎에는 아주 작은 가시가 있어 베이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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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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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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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군락지3

"아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의 '으악새'가 '으악으악'하고 우는 새의 일종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으악새'는 바람에 흩날리는 늦가을의 정취를 대변하는 억새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가까이에서 본 억새
가까이에서 본 억새

명성산 억새 군락지 상층부(팔각정 아래)에는 '궁예약수'가 있다. 이 약수는 국예왕의 망국 한(恨)을 달래주는 듯 눈물처럼 샘 솟아난다. 예로부터 극심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현재 포천시에서는 이 약수를 마시는 것은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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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약수 안내문이 보인다. 나무 아래에 약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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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약수의 모습

궁예약수를 지나 올라가면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 옆에 '1년 후에 받는 편지' 우체통이 있다. 이 우체통 옆에는 "명성산 아름다운 마음을 편지에 담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세요. 10월 한달 간 편지를 써서 억새밭 빨간 우체통에 넣어 주시면 1년 후에 전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체통 근처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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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옆 우체통

억새밭 꼭대기에 팔각정이 있다. 억새밭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서 가슴이 시원해진다. 등산객들은 팔각정에서 잠시 땀을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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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2층으로 되어 있다.

팔각정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명성상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삼각봉 가기 전, 저 아래에 산정호수가 보인다. 산정호수 주변이 아주 예쁘다. 일부 지역이 훼손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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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바라 본 산정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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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훈련장. 비행기, 탱크 등이 화력을 테스트하는 사격장이다.

팔각정을 지나 명성산 삼각봉(906m)에 도착하였다. 서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삼각봉 표지석 뒤에는 양사언(楊士彦)의 태산가(泰山歌)가 쓰여져 있다.

양사언은 조선시대 문인으로 안평대군, 김구, 한호(한석봉)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 중 한 분이다. 참고로 양사언 선생의 묘는 포천시 일동면에 있다.

泰山雖高是亦山 (태산수고시역산) : 태산(泰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 (등등불이유하난)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世人不肯勞身力 (세인불긍노신력)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 (지도산고불가반) : 뫼만 높다 하더라.

이를 쉽게 풀이하여 말하면 아래와 같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하늘 아래에 있는 산에 불과하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올라가는 까닭이 없는데, / 사람이 스스로 오르지 않고 / 산만 높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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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 삼각봉 

명성산 정상에 오르기 전 단풍이 든 멋진 풍경이 들어왔다. 바위, 빨간 단풍, 노란 단풍, 푸른 잎, 이어진 봉우리 등등.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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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물든 봉우리들

드디어 명성산 정상(923m)이다. 10시경 주차장에서 츨발하여 정상에 오르니 오후 2시 10분 전이다. 식사시간 30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3시간 20분 정도 걸려 정상에 도달하였다. 힘든 기분 반과 기쁨이 반이다. 내려갈 생각에 기쁨은 반으로 줄어든 것. 그래도 오늘도 정상을 정복하였다. 기특한 마음이 든다.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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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 정상(923m)이다. 

정상에서 10분 가량 쉬고 오후 2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철원평야의 일부가 보인다. 일설에 따르면 6.25전쟁 후 김일성은 철원평야를 남한에 뺏긴 것이 분하여 3일 동안 통곡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로 철원평야가 넓고 북한 인민의 식량 보급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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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철원평야 일부가 보인다.

정상에서 삼각봉을 거쳐, 팔각정을 지나 올라온 길과는 달리 자인사로 내려 오는 길을 택했다. 처음 어느 정도의 길은 너무나 평이한 길이라 만만한 하산길이 되겠구나 하고 착각하였다. 

서서히 나무계단이 나타났다. 완만한 나무계단에서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시작되었다. 나무계단이 끝난 시점부터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그런데 계단이 아니었다. 여긴 말이 돌계단이지 계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돌 크기도 만만치 않고 날카롭고 가팔랐다. 무릎에 무리가 갔다. 올라갈 때보다 더 많은 땀을 쏟으며 내려왔다. 헉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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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무너질 듯, 가팔랐다. 

이제 자인사에 도착. 궁예왕의 부장이었던 왕건이 이곳에서 산제(山祭)를 지내고, 현몽을 받아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전한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918년)하고 고려 태조에 즉위하자 이곳에 조그만 암자를 세우고, 그의 시호를 따서 절 이름을 신성암(神聖庵)이라 하였다. 300여년 지난 후 산불로 소실되자 고려 충열왕(1227년)에 다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왕건의 자호를 따 약천암(若天庵)이라 했다.

그 뒤 거란침입, 몽고침략,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민가의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절터만 남아 있었다.

1964년 5월,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해공 스님이 13평의 조그만 법당을 새우고 자인사(慈仁寺)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사 자(慈)란 ‘미륵’의 뜻으로 불가(佛家)와 자비를 말하며, 궁예왕이 미륵세계를 구현코자 한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자 함이다. 인(仁)자는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라 하여 영계(靈界)에서나마 궁예왕과 태조 왕건의 맺힌 악연을 풀고 미륵세계를 구현하소서 하는 기원의 의미로 붙여진 절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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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사와 명성산이 잘 어울리게 지어져 있다.

905년 고려 태조 왕건이 태봉국 궁예왕의 수하 부장으로 있을 때 궁예왕의 명령으로 후백제의 금성(지금의 광주)을 공격하러 가기 전에 이 바위에다 제물을 올리고 산제를 지낸 후 현몽을 받아 승전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이 바위는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이 국가의 태평과 국민의 안녕을 기원했던 바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재를 올린터(잿터절)’, ‘잿터바위’라 하며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하게 되어 이 바위를 중심으로 절을 지었다.

음행오행상으로 보았을 때, 이 바위는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의 모양으로서 반대편의 개구리를 낚아채기 직전의 형상이라 이곳이 명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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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터바위

자인사 경내에는 비단잉어 들의 많은 물고기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는 아담한 연못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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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사 경내 연못

자인사를 나와 왼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차량이 주차된 주차장이 나타났다. 내려오는 길도 무척 힘들었고, 자인사 경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뒤라,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경이 되었다. 

이제부터 집으로 가자! GO! 

얼굴에 소금기가 까끌까끌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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