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고양파주] 운악산(雲岳山, 937.5m)이란 이름은 만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운악산은 감악산(675m), 관악산(629m), 화악산, 송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한다. 가을단풍과 봄철의 산목련, 진달래가 이 산의 정취를 흠뻑 적신다. 산행코스는 평탄한 코스, 암벽코스 등이 있어 초보부터 전문가까지 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600m 정도의 등반에서 이번에는 900m가 넘는 산을 도전하게 되었다. 기대와 긴장이 함께 했다.

9월 29일(토) 오전 8시경 고양시에서 출발하여 가평군 조종면에 9시 30분 도착,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주차장 - 입구 - 민영환 바위 - 현등사 - 코끼리바위 - 절고개 - 남근석바위 - 정상 - 만경대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눈썹바위 - 매표소 순으로 총 6.41km이다. 

입구에 운악산과 관련한 시(詩) 한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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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등사 범종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 무우폭포에 푸른안개 오르네

운악산 산행 코스는 보통 2코스(매표소-눈썹바위-병풍바위-미륵바위-만경대-정상)로 올라가서 1코스(정상-남근석-절고개-코끼리바위-현등사-매표소)로 내려온다. 우리는 1코스로 가서 2코스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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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종합안내도에는 3개의 코스를 추천한다. 보통은 2코스로 올라가서 1코스로 내려온다. 

입구에서 조금만 가면 삼충단(三忠壇)이 나온다. 삼충단은 일제의 무단 침략에 항거하다 순국한 조병세(유서 남기고 자결)·최익현(의병 조직하여 싸우다 체포되어 단식하다 순국)·민영환(상소 후 유서 남기고 자결)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10년에 만든 제단이다.

일제 강점기에 없어진 단을 1989년 복원하였으며 2005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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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충단(三忠壇)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민영환 암각서가 있다. 이곳은 구한말 궁내부대신이었던 민명환 선생이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걱정하던 곳이다. 1906년 나세환 외 12인의 의지로 이 바위에 '閔泳煥(민영환)'이라 새겨놓은 암각서가 남아 있어 ‘민영환바위’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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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위의 웃부분에 민영환이라는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민영환바위를 지나 힘차게 올라가면 현등사가 나온다.

신라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527년)한 뒤 포교를 위해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대장경을 모시고 온 인도 승려 마라하미를 위해 현등사를 창건하였다.

현등사는 신라,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렸던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다. 관악산 연주암, 강화도 보문사 등과 함께 경기도 3대 기도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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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등사 현판

현등사 경내에는 경기도 지정문화재인 삼층석탑, 보조국사 지눌의 지진탑, 봉선사종 등이 있다. 또한, 삼층석탑에서 도굴되었던 부처님 진신사리를 2006년 삼성문화재단으로부터 되돌려 받아 원래의 자리에 봉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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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위에서 내려다 본 현등사의 모습

현등사를 나와 본격적인 등반코스로 들어서게 된다. 힘들게 올라가다 보면 코끼리바위가 나타난다.

이는 자연적으로 형상화된 암석으로 옆모습이 코끼리 얼굴의 길게 늘어진 코와 비슷하여 '코끼리바위'라 한다. 자연의 신비함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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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바위

절고개 정상에 올라가면 운악산 정상까지 640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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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고개 꼭대기

정상을 향해 가다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데크에 올라 내려보면 남근석이 보인다. 한국 및 중국 등 유교문화권에서는 칠거지악 중 삼불거 외에는 남편이 일방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풍습이 있었다. 남근석(바위)은 예로부터 아들을 낳게 소원하는 상징의 대상이 되었다. 운악산 정기를 이어 받은 남근석에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남근석
남근석(바위)

드디어 운악산 정상(937.5m, 동봉)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한다. 스스로 대견해 하는 표정이다. 가평군과 포천시가 각각 정상 표식을 해 두었다. 

정상에는 포천 출신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지은 ‘운악산 깊은 계곡에’라는 시(詩)가 있다.

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

노는 사람들 성(姓)을 말하지 않았는데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용솟음치는 흰기운 폭포수 장대하고

푸른 산 빗긴 섬에 지축이 기운 듯

은근히 호계(虎溪)에서 이별하니

석양 속에 저문 산 밝아오네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였다. 어렸을 때, 훗날 함께 재상이 된 이덕형과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여 '오성과 한음'의 우정과 해학이 얽힌 일화가 오랫동안 전해오게 된다. 권율 장군의 딸과 혼인하였다.

귀양가는 길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표현한 시조가 유명하다.

[철령 높은 봉에]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띄었다가

님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정상
운악산 정상

정상에서 내려 오면서 만경대에 멈추었다. 사방의 산들이 눈안에 들어왔다. 저 멀리 구름도 흘러간다.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다른 산으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노적봉, 칼봉, 매봉, 깃대봉, 대금산 등이 보인다. 사람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의미인 우화등선(羽化登仙)의 싯구가 절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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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 전경
단풍
일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내려 오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만만치 않은 지역이 많다. 역으로 단순하지 않아 산악인들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 많아 등반하는 맛이 솔솔하다. 다행히 안전 장치가 곳곳에 구비되어 있어 조심만 하면 산행에 큰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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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이 아찔하다.

만경대를 뒤로 하고 내려 오다면, 잘 생긴 미륵바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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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바위 

병풍바위(인도 승을 내친 바위)도 보인다. 

옛날 신라 법흥왕 시절 인도 마라하미가 이 산을 오르다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바위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정신이 헛갈리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부처님의 뜻이라 여겨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으나 자꾸만 미끄러졌다. 마치 바위가 오르지 말라고 내치는 듯했다고 한다. 결국 마라하미는 바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행을 하다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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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바위

아래로 더 내려오면 눈썹바위(선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된 총각)가 나타난다. 눈썹바위에 얽힌 일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을 보고는 치마를 하나 훔쳤다고 한다.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고, 그 말에 마음이 약한 총각은 덜컥 치마를 내주었다고 한다.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갔고, 선녀 말만 믿은 총각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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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바위

주차장 근처까지 내려 오면 운악산 안내도가 보인다. 감악산, 관악산 보다는 좀 더 힘든 여정이었으나, 보람있고 경치도 훌륭한 산행이었다. 거의 6시간이 소요되었다. 종종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산행한 결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안내도
주차장 근처에 있는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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