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남 사회복지법인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최근 정치권의 '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내면 안에 눌려 있었던 우리 국민의 마음과 생각이 표면 위에 떠올라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게 되었다.

남녀와 세대 간의 차이 및 갈등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므로 특별히 다른 문제로 비화되지 않았으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보수(保守)와 진보(進步)라는 양대 산맥으로 크게 부각되어 드러났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역사관과 사회의식은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고 우리 안에 분열을 초래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 상대방이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를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가 보수고, 진보일 수는 없다. 특정 사안을 두고 어떤 성향을 가졌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한다. 이 성향 테스트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의 표출로 말미암아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었다.

단답형 식으로 박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 등을 찬성하면 진보요, 박대통령 편에서 박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는 보수다.

박대통령 탄핵가결을 기점으로 이제는 여당 안에서도 이른바 박대통령 중심의 주류 세력인 '친박'과, 박대통령을 반대하는 비주류 세력인 '비박'으로 나누어진 경우와 같다. 쉽게 말해 현 정권을 지지하면 보수고, 반대하면 진보다.

진보는 주로 젊은 층으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촛불을 들고 모였다. 보수는 주로 노년층으로 서울역과 동대문에서 태극기를 들고 모였다. 아직까지 서로가 부딪혀 물리적 충돌의 마찰을 일으킨 적은 없지만,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SNS 등을 통해 서로에게 무차별 난사를 해대고 있다.

이 싸움은 진보가 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우세한 편이다. 보수에서는 눈에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그 배후에는 보수의 힘이 더 막강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치권의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오직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내 모든 충성을 다짐한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굳이 나의 정치적 성향을 말하라면 나는 진보주의에 속하는 편이다. 우선 현재의 정치적 상황으로만 말하게 될 때 박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부류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다!'라고 말하지 않고, '진보주의에 속하는 편이다'라고 말한 까닭은 정치논리로만 따질 때 진보이지 다른 면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그

신앙적인 부분만 말하라면 나는 보수다. 근본주의적 보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보수다. 젊었을 때는 극우적 성향의 극보수였던 것 같은데, 그나마 목회 현장에서 기득권층이 아닌 이른바 소외 계층의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접하면서 신학적 사고도 바뀌는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신학적 사고는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인 신앙에 있어서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보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명한 기업혁신적 발언이 나에게도 적용된다. 그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는 다 바꿔라!"라고 말했다. 나는 신앙(예수 십자가 부활 천국 성경 기도)적인 면에서만 보수이지,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진보다.

정치나 사회의식 그리고 역사관 역시 진보에 속한다. 물론 역사관에 있어서도 성경을 토대로 한 구원사만은 보수지만, 세속사는 모두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예수님의 행보는 급진주의(急進主義 radicalism)자로 보였을 수밖에 없었다. 헤롯왕을 가리켜 '여우'라고 비난했고, 기득권층인 바리새파나 사두개파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자들'이라는 독설을 내뱉었다. 성전 안을 더럽히는 상인들에 대해서는 상을 뒤엎고 회초리를 휘두르시기도 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불의 앞에서는 진노의 하나님이셨다.

모든 것은 변한다. 역사는 계속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흘러간다. 이 역사 속에서 정치도, 사상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것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기를 바라겠는가? 이 '변화'는 개혁이든, 보수(補修 리모델링)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침체요, 그것은 곧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은 변하고, 변하는 것 자체가 살아있음의 증표다.

작금의 정치적 사안에서 보수가 진보를 향해 외치는 두 가지 구심점을 스스로 깨지 않고는, 보수는 더 빨리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선 정치성향에서 안보를 내세워 자신들과 뜻이 다르면 무조건 좌파의 '종북논리'로 몰아세우는 이 작태를 거둬들이지 않는 한 국민들의, 특히 젊은 층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도저히 수긍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지극히 논리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노년층의 그런 비논리적인 안보론에 먹혀들리가 만무하기에 그렇다. 사실 이런 논리 때문에 나도 보수를 버렸다.

또 하나는 최근 박대통령의 비리 문제가 들춰질 때마다 덧붙여 주장하는 역대 정치인들의 '비리의 일반화, 보편화'이다.

처음에 박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했으나 결코 법망을 피할 수 없음을 알자, 이제는 "박대통령만 비리가 있느냐? 역대 대통령 중에서 비리가 없는 대통령이 누구 있느냐? 그런데 왜 유독 박대통령만 가지고 이렇게 떠드느냐?"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 역시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기에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건 그 자리에 있으면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하는 투인데, 이게 '비리의 일반화, 보편화'라는 것이다.

이런 비리가 어찌 일반화 되고 보편화 되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럴 수 있는가. 이것처럼 옹졸하고 궁색한 변명 아닌 변명이 없다.

그런 비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내 때에서는 그 비리의 연결고리를 차단해야 하고, 설령 나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임했다면 솔직히 자신의 무능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할 일이다.

그게 어디 다른 대통령과 빗대어 할 말이냐는 것이다. 이건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적 상황에서 스스로 '보수'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현재 고집해 온 '종북 논리'와 '비리의 일반화, 보편화'를 스스로 깨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와의 '일반적 대화'가 소통될 수 있고, 객관적 평가의 똑같은 입장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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