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욱 어르신 (1924년~)8.15 광복의 기쁨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다시 맞닥뜨린 비극, 6.25명동 한복판에서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휴가 장병은 조속히 귀대하라”1950년 6월 25일, 평화롭던 일요일이었다. 사촌 동생과 같이 명동으로 책을 사러 나간 길에 느닷없는 방송을 듣고 온몸이 경직됐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겪었던 그 살벌한 형국과 다시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중앙대학교 2학년 다니다가 6.25사변이 터졌다. 전쟁이 터지고 고향으로 내려오던 그 날 6월 27일 한강 다리가 폭파되었다.
이정욱 어르신 (1924년~)70년을 아내와 키운 連理枝(연리지)“우리 막둥이 정자, 큰놈은 미숙이, 둘째는 영옥이”누군가가 나에게 며느리들 이름을 물었다. 이제 며느리는 없고 딸만 남았다. 스무 살 순자가 연지곤지 찍고 내 품에 안겨 새 각시가 된 지 까마득한 세월이 지났다. 70년. 한 사람의 기나긴 인생을 담은 시간이다. 그 깊은 세월을 아내와 둘이 걸었다. 두 손 잡고 작은 소로길(작은 골목길)을 지나서 우리 아이들과 같이 신작로까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한때는 드넓은 바다 위를 헤엄치는 부레 없는 상어처럼 고단하기만 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