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나올거요” 라고 우리 어머니들은 주저 없이 말씀하신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생을 드러냄이 아니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하고 한고비 넘겼더니 다시 또 산 넘어 산을 만나는 드라마 같은 인생을 다들 살아오셨다.그래서 한마디로 책 속의 주인공이 될 법하다고 스스로 자평하신다.진경숙 어머니의 삶도 예외는 아니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또한 책 한 권으로 부족한 분이었다. 어머니는 이북에서 진신자로 태어나 지금은 진경숙으로 살고 계
1946년 김정자옥수 지업사의 미닫이문이 빼꼼 열렸다. 사모님은 자동으로 커피포트의 전원을 켰다. 손님 맞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옥수 지업사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가 누구라도 기분 좋은 대접을 받는다. 옥수 지업사 사모님은 손님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일면식이 없는 낯선 이도 한결같이 따스한 미소로 맞이한다. 그리고 이내 열다섯 평 남짓, 작은 공간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언제나 열려있는 문 그리고 마실 거리우리 가게는 커피를 비롯해 녹차 둥굴레차 메밀차를 손님 입맛대로 고른다. 빛바랜 냉장고의 문이 열리면 에너지드링크가
고목(古木)의 그늘이 주는 평안, 느티나무 같은 사람마을 입구 느티나무 한그루, 오랫동안 오가는 주민들의 벗이 되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메아리로 돌려주고 지나는 차 소리, 세상의 소란한 소리도 모두 삼키며 든든한 이웃이 되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그 동네에서 나이 많기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말 그대로 이원의 ‘터줏대감’이다. 느티나무와 벗 되는 터줏대감이 한 분이 더 계신다. 이종무 아버님무수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을이 아버님을 지키고, 아버님도 마을을 저버리지 않았다.■ 징용, 겁에 질린 얼굴로
[고양일보]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어여쁘던 꽃이 물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이순희 어머님이 소녀시절부터 잘 부르시던 남인수 선생님의 ‘이 강산 낙화유수’ 노랫말이다. 어머니께서 세월의 질곡과 무게를 알기 전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당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열 살 무렵 무심코 흥얼대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렀다. 질곡의 삶을 견뎌내고 이제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어여쁘던 꽃이 물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이순희 어머님이 소녀시절부터 잘 부르시던 남인수 선생님의 ‘이 강산 낙화유수’ 노랫말이다. 어머니께서 세월의 질곡과 무게를 알기 전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당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열 살 무렵 무심코 흥얼대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렀다. 질곡의 삶을 견뎌내고 이제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만끽하
1930년 이후분 어르신운명이라는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삶이 있다.어르신은 스물한 살에 남편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눈망울 맑은 두 살 아들과 험난한 세상에 내 던져졌다.열여덟 살에 시집가서 2년을 살고 어르신 인생은 앞길을 짐작할 수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독하고 기막힌 세월을 거슬러 한 많은 삶은 아흔두 해를 지나고 있다.그 세월을 어찌 살아내셨을까요. 존경합니다. 당신의 삶을...■ 지독한 불운의 올가미네 살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만났다. 어머니가 동생을 낳고 산후풍으로(후에 철들어 알게 된 어머니의 죽음) 고생하시다가 돌
■ 여북하면(오죽하면) 절간으로 갔을까!수원, 여주, 이천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가 돼서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잘 자라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는데 나는 한 번 더 인생의 회오리바람을 맞고 또 쓰러졌다.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피눈물을 또 흘려야 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마디 건네셨다.“이미 세상을 알아버려서 절에서 못산다.”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절에서도 안 받아줘, 목숨
가끔씩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마음의 물감을 풀어 정물화 한 점 그렸다. 나란히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투박한 항아리였던 장독대를 한 폭의 그림 속에 앉혔다. 낮은 담장 아래 봉숭아꽃 옆에 앉혀 놓으니 근사하다.“어르신 봉숭아꽃 너무 예쁘네요. 잘 가꾸셨어요.”“아니 내가 안 심었어. 저절로 폈어.”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눈보라가 밀려와도 때마다 그 날이면 알아서 착착 자기 자리를 지켜.변덕스럽고 궂은 날 좋은 날 유난떠는 사람들보다 훨씬 양반이야“어르신도 꽃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우리는 집안의
복숭아가 제철일 때 만나 뵈었다. 어르신이 복숭아를 깎아주시며 시집가기 바로 전까지 복숭아 간소메 공장에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셨다. 복숭아 백도 통조림, 간소메라는 일본말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기억이 추억이 되었다. 젊은 날에는 고생만 하고 살았던 기억밖에 없어서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는 어르신. 살아보니 다들 저마다 고단한 짐을 다 짊어지더라.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옆 사람 보면서 못난 나를 담금질 할 것이 아니라나는 그저 내 갈 길을 가는 것, 그게 잘 사는 것이라고 명쾌한 해답을 내놓으셨다.배움의 통로는 다양
쐐기풀을 잡듯이 인생길을 걸어오신 어르신. 여름에 꽃이 피는 쐐기풀은 줄기나 잎사귀에 연한 가시가 있다. 만지면 당연히 따끔거린다. 살짝 스치거나, 건드리면 가시에 찔려서 상처가 나지만 특이하게도 오히려 꽉 잡으면 아무렇지 않다. 우리 삶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용기가 필요할 때는 대담하게 처신하는 것이 선한 결과를 낳는다.인생 무대에서 주역으로 은퇴한 미남 배우를 또 만났다. 최재석 어르신. 들려주시는 말씀 사이사이에 “말하면 뭐혀”를 추임새로 재차 넣으셨다. 근현대사의 주역으로 살아오신 어르신은 구순을 목전에 두고 계신다. 맨주
이정욱 어르신 (1924년~)70년을 아내와 키운 連理枝(연리지)“우리 막둥이 정자, 큰놈은 미숙이, 둘째는 영옥이”누군가가 나에게 며느리들 이름을 물었다. 이제 며느리는 없고 딸만 남았다. 스무 살 순자가 연지곤지 찍고 내 품에 안겨 새 각시가 된 지 까마득한 세월이 지났다. 70년. 한 사람의 기나긴 인생을 담은 시간이다. 그 깊은 세월을 아내와 둘이 걸었다. 두 손 잡고 작은 소로길(작은 골목길)을 지나서 우리 아이들과 같이 신작로까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한때는 드넓은 바다 위를 헤엄치는 부레 없는 상어처럼 고단하기만 한 시
세 번째 매듭 ; 남편의 그림자, 달빛아래 숨기놀이 하는 7남매나는 친정에서 딸 셋으로 성장했다. 아버지 어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셔 와서 같이 지내다 돌아가셨다. 남편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장인・장모한테 남들이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효자였고 우리는 생전 싸움을 안했다. 애들 앞에서 큰소리 내 보지 않았던 우리 품에서 자란 큰딸 주신이가 “엄마 나도 시집가면 엄마처럼 살 줄 알았더니 싸울 일이 왜 이렇게 많아? 엄마는 어떻게 안 싸우고 살았어?”싸울 일 없는 부부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나. 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