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꽃 같은 시절이 있다. 어머니댁 낮은 담장 밑으로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낮 달맞이꽃, 소담스런 맨드라미, 과꽃, 이름도 어여쁘고 자태도 얌전하다. 이수자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다.■ 거짓말, 저 열아홉 살이에요“열아홉 살이에요”시집가서 이웃 형님들이 몇 살이냐 물으면 열아홉 살 이라고 거짓말을 줄곧 했다.열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말하기가 너무 창피했다. 입하나 덜겠다고 오라버니가 보낸 시집이라 더군다나 키 작은 내가 열다섯 살 때는 언뜻 보면 열 살짜리 계집아이로 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시집을 간다니 더군다나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어여쁘던 꽃이 물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이순희 어머님이 소녀시절부터 잘 부르시던 남인수 선생님의 ‘이 강산 낙화유수’ 노랫말이다. 어머니께서 세월의 질곡과 무게를 알기 전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당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열 살 무렵 무심코 흥얼대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렀다. 질곡의 삶을 견뎌내고 이제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만끽하
공자가 젊은 시절(36세) 齊 나라에 갔을 때 경공(景公)이 정치에 관해 물었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로서, 신하는 신하로서, 아비는 아비로서, 자식은 자식으로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齊 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지극히 당연한 2,500여 년 전 공자 말씀이 2021년 오늘 우리들의 정수리를 세차게 때린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하라는 이 평범한 말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 공자님 말씀을 요즘 말로 바꾸면 군(君)은 대통령이고 신(臣)은 장관과 공무
가장 깊은 그리움, 가장 먼 그리움은 같은 사람을 품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이다.당신이 할머니가 됐어도 아직도 어머니 아버지가 꿈에 보이면 다음 날은 아침부터설렌다는 최영자 어르신.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8할을 넘었다. 당신 삶 안에 들어왔던 사람들 중 굳이 저울질한다면 부모님만큼 오랜 그리움으로 남은 이는 없다고 하셨다.아버지의 장모 섬김에 마을이 감동하다.부모님은 이제 그리움이 화석이 돼서 가슴 한편에 둥지를 틀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버님은 최 원동, 어머님은 정 옥자, 아버님은 군수한테 효자상도 받으셨다. 그것도 본가 부
송용환 (1938년~)좁은 골목길을 따라갔다. 대문 옆에 혼자 서 있는 문패들을 지나 당도한 그 집 문패에 나란히 서 있는 부부 이름 ‘송용환 박영순’ 열려진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자스민 꽃향기가 두 분 계시는 내실로 안내했다. 어르신은 사모님을 곁에 두고 한가로이 누워 TV를 보고 계셨다. 어르신은 쑥스러운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지만 어르신 인생의 큰 락(樂) 이었던 민물 고기잡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화색(和色)이 만연했다. 어르신이 수십 년간 청성면 냇가에 수천 번을 던져 놓았던 그물, 어르신도 인생이 쳐놓은 그 그물에 갇혀
배좌규 어르신 (1935~)숲은 천이(遷移,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를 겪으며 울창해진다.小木이던 내가 꿈꾸던 숲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따뜻한 가정이었다. 유년의 기억은 고단하고 고독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음을 닫았다. 물론, 포기는 아니었다. 외아들이란 부채의식은 인생의 기회마다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길에 절망만 기다리지는 않았다. 착한 아내를 만나 7남매를 두었다. 중동 영성목공소, 7남매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36년간 내 청춘을 바친 목공소
박애일 어르신 (1938~)아침 산행 길에, 형형색색 단풍 길을 지나며 감탄을 자아냈다. 오래전 그 시절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서 본 기억도 희미하다. 철지난 낙엽이 뒹굴면 ‘겨울이 오겠구나’ 한숨 쉬며 가을이 지난 흔적도 찾지 못했다. 이제 젊은 날의 그 척박했던 힘겨움이 싹이 되어 눈과 마음이 같은 생각을 하는 안락한 일상을 만났다. 80년이 어느 틈에 내 곁을 스쳐 지났는지 분간이 안 되는 때다. 성실한 소목수 였던 남편과의 60년도 찰나의 순간이었다. 고단한 시절을 뒤로하고
[고양일보] 출판시장이 어렵다. 종이책 시장은 지난 10년 만에 절반으로 축소됐고 전자책 시장은 생각보다 성장이 더디다. SNS, 유튜브 등 경쟁 매체가 등장한 것과 전자책 시장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20여 년 전 출발한 전자책은 오랫동안 제자리걸음만 해오다 최근에야 좀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전자책 전문 리더기의 성능 개선으로 전자책 독자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여전히 종이책 시장이 반 토막 나도록 빠져나간 많은 독자들이 전자책 보다는 페이스북·유튜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