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북하면(오죽하면) 절간으로 갔을까!수원, 여주, 이천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가 돼서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잘 자라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는데 나는 한 번 더 인생의 회오리바람을 맞고 또 쓰러졌다.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피눈물을 또 흘려야 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마디 건네셨다.“이미 세상을 알아버려서 절에서 못산다.”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절에서도 안 받아줘, 목숨
가끔씩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마음의 물감을 풀어 정물화 한 점 그렸다. 나란히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투박한 항아리였던 장독대를 한 폭의 그림 속에 앉혔다. 낮은 담장 아래 봉숭아꽃 옆에 앉혀 놓으니 근사하다.“어르신 봉숭아꽃 너무 예쁘네요. 잘 가꾸셨어요.”“아니 내가 안 심었어. 저절로 폈어.”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눈보라가 밀려와도 때마다 그 날이면 알아서 착착 자기 자리를 지켜.변덕스럽고 궂은 날 좋은 날 유난떠는 사람들보다 훨씬 양반이야“어르신도 꽃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우리는 집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