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일보] 고양특례시는 시민들의 생활 속 법률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고양시 무료법률 상담실을 운영한다.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한 시민들이 상담이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하고, 시민들의 법적 권리 구제에 한발 앞선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접근성 좋은 덕양구청에 위치… 법률·세무·노무 등 상담 서비스 제공고양시 무료법률 상담실은 지난해 1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개소 당시에 상담 건수는 월 50건 정도였으나,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월평균 210건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덕양구에 사는 이 모 씨는 가족 내 사정으
[고양일보] 추석 당일 남편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한 뒤 실종되었던 50대 여성이 실종 21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일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주변 수색 중 지난 9월 30일 오전 4시경 일산호수공원에서 물에 떠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A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로 모두가 행복해야 할 추석 당일 오전 7시경 휴대폰을 꺼둔 채 집을 나섰고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하던 남편이 112에 신고했다.A씨는 이틀 전에도 서울 양화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여 구조된 이력이 있어 이점을 착안, 일산 호수공원 호수교 일대를
[고양일보] Anti-Feminist(안티 페미니스트) 인터넷 까페가 있습니다. 이 까페가 내걸고 있는 구호는 "페미니스트, 된장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입니다. 좀 놀라시겠지만, 나도 이 까페의 회원입니다. 이제 신참이라 글 한 번 제대로 올려보지 못하고 그저 남들이 떠드는 이야기들을 곁눈질로 귀동냥하면서 오늘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여성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어떠한지 스스로 슬금슬금 저울질 하고 있는 중입니다.사실 나는 직업상 많은 여자들 속에서 지내게 됩니다. 내가 움직이는 곳들은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곳입니
[고양일보] 어머니는 애창곡인 백설희 님의 ‘봄날은 간다’를 술술 실타래 풀어내듯 불러주셨다.이젠 한 음 올리기도 어려워서 전처럼 간드러지는 육성으로 노래를 할 수 없지만평생 내 마음의 노래였다고 눈에 이슬을 촉촉이 머금고 말씀을 건네주셨다.덧붙여서 어쩌면 노래 구절도 우리 인생과 닮지 않았소? 하시며 한 소절 한 소절 정성껏 들려주셨다.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
[고양일보]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나올거요” 라고 우리 어머니들은 주저 없이 말씀하신다.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생을 드러냄이 아니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하고 한고비 넘겼더니 다시 또 산 넘어 산을 만나는 드라마 같은 인생을 다들 살아오셨다.그래서 한마디로 책 속의 주인공이 될 법하다고 스스로 자평하신다.진경숙 어머니의 삶도 예외는 아니었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또한 책 한 권으로 부족한 분이었다. 어머니는 이북에서 진신자로 태어나 지금은 진경숙으로 살고 계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뒷짐 지고 윗마을로 오르시는 할머니께 차순태 어르신 댁을 여쭈었더니 할머니께서 “순태, 그니 집은 이짝 골목으로 들어가서 첫 번째 언덕 집이여” 여든 일곱의 어르신을 순태라고 부르신다. 그렇다면 할머니도 동년배이거나 손위 누이 쯤 되는 분이다. 무수한 세월을 같이 걸어온 이웃들이다.어르신 댁 방문을 열면 흑백사진 속의 부부가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차순태 어르신의 어머니 아버지 사진이다.뭉클한 마음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곁눈으로 어르신의 눈에 맺힌 이슬을 보고 말았다. 여든 일곱의 ‘노인’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고양일보] 누구나 꽃 같은 시절이 있다. 어머니댁 낮은 담장 밑으로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낮 달맞이꽃, 소담스런 맨드라미, 과꽃, 이름도 어여쁘고 자태도 얌전하다. 이수자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다.■ 고단한 삶속에 한줄기 빛, 다정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하루 종일 새벽부터 집안 살림에 막내 시누 업고 우물물 길어오고 밭농사에 누에까지..작은 몸으로 무쇠처럼 일만 했다. 삶이 뭔지 인생이 뭔지 한순간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내 삶에 유일한 희망은 시할머니였다. 시할머니도 나와 같은 고단한 시절을 분명히 보냈던 분인데
누구나 꽃 같은 시절이 있다. 어머니댁 낮은 담장 밑으로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낮 달맞이꽃, 소담스런 맨드라미, 과꽃, 이름도 어여쁘고 자태도 얌전하다. 이수자 어머니도 그런 분이셨다.■ 거짓말, 저 열아홉 살이에요“열아홉 살이에요”시집가서 이웃 형님들이 몇 살이냐 물으면 열아홉 살 이라고 거짓말을 줄곧 했다.열다섯 살에 시집왔다고 말하기가 너무 창피했다. 입하나 덜겠다고 오라버니가 보낸 시집이라 더군다나 키 작은 내가 열다섯 살 때는 언뜻 보면 열 살짜리 계집아이로 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시집을 간다니 더군다나
1946년 김정자옥수 지업사의 미닫이문이 빼꼼 열렸다. 사모님은 자동으로 커피포트의 전원을 켰다. 손님 맞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옥수 지업사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가 누구라도 기분 좋은 대접을 받는다. 옥수 지업사 사모님은 손님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일면식이 없는 낯선 이도 한결같이 따스한 미소로 맞이한다. 그리고 이내 열다섯 평 남짓, 작은 공간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언제나 열려있는 문 그리고 마실 거리우리 가게는 커피를 비롯해 녹차 둥굴레차 메밀차를 손님 입맛대로 고른다. 빛바랜 냉장고의 문이 열리면 에너지드링크가
원기소 만들던 서울제약의 또순이외갓집에 기거 하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방직회사에 다녔다가 제약회사 채용 공고를 보았다. 서울 올라 갈 때는 촌티를 안내려고 핑크색 유똥 치마에 저고리 해 입고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우선 서울살이는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잘 사는 집도 석탄을 떼서 난방을 하느라 얼굴만 뽀얗고 다들 새카맸다.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자취하고 마침 제약회사 공고가 났다. 당시는 유한양행, 서울제약 (서울 약품 공업사), 삼일제약등 제약회사가 세 곳 이었다. 나는 서울제약(서울 약품 공업사)에 입사를 했다.서울제약
무명천에 핀 목단 꽃“나 특별한 얘기도 없는데...”전화기 너머로 말끝을 흐리셨지만 1층까지 마중 나오신 어머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어머니의 반달 같은 눈웃음에 덩달아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마스크가 원(怨)이로다.“나 작년까지는 펄펄 날라 다녔는데...”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이 너무 귀하다고 우회적으로 마음을 드러내셨다. 노인 일자리 활동과 포크 댄스로 건강을 지키시고 실버 기자단이라 시간도 유익하게 쓰고 계셨다. 去頭截尾(거두절미), 멋진 어머니...결핍투성이던 유년, 어린 눈에 그 넓던 신작로는 그저 좁은 골목길이더라충
[고양일보]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어여쁘던 꽃이 물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이순희 어머님이 소녀시절부터 잘 부르시던 남인수 선생님의 ‘이 강산 낙화유수’ 노랫말이다. 어머니께서 세월의 질곡과 무게를 알기 전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당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열 살 무렵 무심코 흥얼대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렀다. 질곡의 삶을 견뎌내고 이제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낙화유수 네 글자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어여쁘던 꽃이 물위로 진다. 물결 따라 흘러간 꽃잎은 어디로 갔나이순희 어머님이 소녀시절부터 잘 부르시던 남인수 선생님의 ‘이 강산 낙화유수’ 노랫말이다. 어머니께서 세월의 질곡과 무게를 알기 전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당신의 삶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열 살 무렵 무심코 흥얼대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렀다. 질곡의 삶을 견뎌내고 이제 석양의 노을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만끽하
1930년 이후분 어르신운명이라는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삶이 있다.어르신은 스물한 살에 남편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눈망울 맑은 두 살 아들과 험난한 세상에 내 던져졌다.열여덟 살에 시집가서 2년을 살고 어르신 인생은 앞길을 짐작할 수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독하고 기막힌 세월을 거슬러 한 많은 삶은 아흔두 해를 지나고 있다.그 세월을 어찌 살아내셨을까요. 존경합니다. 당신의 삶을...■ 아픈 기억 그 너머의 아련한 추억들대전도 나에게 사고무친(四顧無親)의 망망대해와 같은 곳이었다. 그래도 옥천에서 가깝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1930년 이후분 어르신운명이라는 말로도 위로가 안 되는 삶이 있다.어르신은 스물한 살에 남편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눈망울 맑은 두 살 아들과 험난한 세상에 내 던져졌다.열여덟 살에 시집가서 2년을 살고 어르신 인생은 앞길을 짐작할 수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독하고 기막힌 세월을 거슬러 한 많은 삶은 아흔두 해를 지나고 있다.그 세월을 어찌 살아내셨을까요. 존경합니다. 당신의 삶을...■ 지독한 불운의 올가미네 살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만났다. 어머니가 동생을 낳고 산후풍으로(후에 철들어 알게 된 어머니의 죽음) 고생하시다가 돌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안 남았다. 여야후보의 발길이 호남으로 충청으로 분주하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은 자신을 둘러싼 대장동 비리 의혹과 살인자 조카 변론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모든 잘못은 “나의 잘못이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끝냈다. 싸움의 예봉을 피하는 고도의 전략이다. 고생한 경륜처럼 보이던 하얀 머리가 어느 날 갑자기 까맣게 변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을 쏟으며 서슴없이 무릎을 꿇는다. 과로로 혼절까지 했던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 여북하면(오죽하면) 절간으로 갔을까!수원, 여주, 이천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가 돼서 나를 찾아왔다. 그래도 잘 자라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는데 나는 한 번 더 인생의 회오리바람을 맞고 또 쓰러졌다.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피눈물을 또 흘려야 했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 절간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마디 건네셨다.“이미 세상을 알아버려서 절에서 못산다.”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절에서도 안 받아줘, 목숨
가끔씩 글쟁이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화가로 변신하는 날이 있다. 그날도 마음의 물감을 풀어 정물화 한 점 그렸다. 나란히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투박한 항아리였던 장독대를 한 폭의 그림 속에 앉혔다. 낮은 담장 아래 봉숭아꽃 옆에 앉혀 놓으니 근사하다.“어르신 봉숭아꽃 너무 예쁘네요. 잘 가꾸셨어요.”“아니 내가 안 심었어. 저절로 폈어.”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눈보라가 밀려와도 때마다 그 날이면 알아서 착착 자기 자리를 지켜.변덕스럽고 궂은 날 좋은 날 유난떠는 사람들보다 훨씬 양반이야“어르신도 꽃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우리는 집안의